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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8>소록도한센병 환자들의 붉은 황토섬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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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8  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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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 길, 전라도 길.
-한하운 시인의 시 ‘소록도 가는 길’ 부분-

 

   
▲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


소록도. 문학청년 시절 한하운의 시 ‘소록도 가는 길’과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설움과 분노, 혁명의 감정이 뒤엉켜 그렇게도 간절히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번 탐방이 이미 열 번을 넘었다. 새끼 사슴 모양의 섬, 소록도. ‘절망의 땅’에서 ‘지상의 천국’으로 운명이 바뀐 섬. 필자의 고향 마을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곳에도 나환자 마을이 있었다. 가끔 집안 잔치 때 쓸 달걀을 사러 거기로 심부름을 갈 때면 어린 나이에 어찌 그리도 두려웠는지,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편견에 대해 마음속으로 용서도 빌고 한하운 시인의 삶의 세계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 등장하는 나환자들의 삶을 더듬으며 그들의 아픔을 끌안고 싶은 마음으로 소록도를 다시 찾았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것을 함께 아파하는 것도 힐링이 되지만, 남을 아프게 했거나 남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그 대상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또한 자신에게 소중한 힐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떠난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8, ‘당신들의 천국, 소록도’에 가면서 어린 시절 필자가 품었던 나환자에 대한 편견과 그로 인해 받았을 그분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번 힐링여행을 떠났다.
 

   
▲ 특별관리 대상의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한 감금실



◇슬픔의 바탕은 절망이다

고흥에서 소록도와 거금도로 이어지는 거금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녹동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까지 갔다. 소록도를 바라보면서 10 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소록도 가는 길’과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가곤 했었다. 이번에는 다리를 건너자 바로 소록도에 도착했다. 학부모독서토론회 회원들과 동행한 힐링여행이었는데 함께 한 모든 분들이 처음 탐방하는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설레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지 모두가 밝은 표정이었다. 특히 소록도병원과 기념관, 중앙공원이 있는 곳까지 펼쳐져 있는 해안길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제목처럼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웠다. 함께 간 탐방객들은 소록도가 나환자들의 아픔과 애환으로 채워져 있던 수용소라는 것도 잊은 채 모두가 행복한 낯빛으로 소록도병원과 생활전시관을 찾았다. 마침 검시실과 감금실에서 필자의 설명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즐거워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모두가 슬픔을 가득 머금은 경건한 자세로 바뀌어 있었다.

감금실은 붉은 벽돌로 된 두 건물은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철창이 설치된 15개의 방이 건물 안에 있었다. 일제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환자를 구금하여 감식처분, 체형 등을 가해 왔으며 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살아서 나오더라도 예외 없이 강제로 정관절제수술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감금실 바로 옆에 검시실이 있는데 이 건물은 두 칸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이용되었고, 다른 하나는 감금실에서 살아나온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단종수술인 정관절제 수술실로 이용되었는데, 나환자 단종수술은 일제의 나환자 박해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나환자들이 자녀를 두지 못하게 하려고 마취도 시키지 않고 실시하는 단종수술, 단종의 절망만큼이나 고통 또한 깊었으리라 생각한다. 단종대를 본 뒤 검시실을 나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잘 가꾸어 놓은 소록도 중앙공원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

발길을 무겁게 돌려 건너편 언덕에 세워둔 소록도 생활전시관을 둘러보고, 중앙공원에 닿은 탐방객들은 또 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 정리된 공원 가운데는 하얀 천사의 모습으로 선 구라탑이 지금도 나환자들을 구원해주려는 듯 날개를 활짝 펴고 있었다. 그리고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에는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모든 시비가 바로 서 있는데 비해 이 시비는 반듯하게 누워 있다. 일제시대 나환자들에게 폭력의 수단이었던 이 바위. 누워 있는 이 바위가 일어서는 날 그들의 한이 풀리고 그들의 소박한 소망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뜻에서 시비를 눕혀 놓은 것이었다. 공원 구석구석이 모두 상상의 공간처럼 아름다웠다. 바로 소설 속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현실 속에서 나환자들은 ‘우리들의 천국’을 이곳에서 찾았을지도 모른다. 위정자들이나 가진 자들의 천국이 아닌 이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천국’을 작가 이청준은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나환자들의 애환으로 가꾼 후박나무 한 그루, 향나무 한 그루, 푸른 융단처럼 깔린 잔디가 모두 예사롭게 보이질 않았다. 더구나 일어서지 못한 채 누운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를 보았을 때 그들의 설움이 바위에 짓눌려 있는 듯해 눈물이 빙 돌았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숨은 아픔이 그 아름다움을 더욱 슬프게 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나를 반성하고, 무관심한 방관자로 인해 더 아파했을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내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은 듯 필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구라탑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구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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