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과 햇볕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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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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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희 (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시인)
손영희

몇 년 전 유럽에 있는 문학관을 몇 군데 돌아보고 온 적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영국의 제인 오스틴 하우스였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센스, 센스어빌리티’ 등을 쓴 작가로 우리에겐 영화로 상영되어 잘 알려져 있다.

영국 농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오스틴 하우스는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고 마을의 전경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이곳이 제인 오스틴 하우스인지 모를 정도로 입구에 조그마한 간판이 서 있을 뿐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2층과 3층의 좁은 계단이 작은 방들과 연결되고, 그녀의 체취가 금방이라도 코를 자극할 것 같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친필원고, 그녀가 글을 쓸 때 사용했던 펜,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 바느질 그릇 등이 쓰이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고, 그녀가 독신으로 지내는 동안 평생 친구로 지냈던 여동생의 사진과 가족들의 이력이 전시돼 있었다.

우리의 전시공간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오스틴 하우스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여 한 작가의 생애 속으로 우리를 들여보낸다. 몇 백 년이 다시 흐른다 해도 그녀의 체취는 그대로 살아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은 제인 오스틴 기념재단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순수하게 민간에서 기부금을 받고 기념품을 판매하여 운영비를 마련한다. 그 외에도 헤르만 헤세 기념관,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프랑크의 집, 찰스디킨스 기념관 등을 돌아보면서 많은 부러움을 느꼈다. 인생의 길잡이였던 한 작가의 생애와 만나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전국에 많은 문학관이 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문학관을 만들어 놓고 활성화시키지 못해 현상유지도 어려운 문학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생가를 다시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새로 터를 닦고 새로 찍은 벽돌과 새 짚으로 지붕을 만들어 놓은 작가의 생가는 그저 관광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진주에도 문학관이 세워졌다. 새벼리 언덕에 2014년에 문을 연 이곳은 개인이 사재를 털어 세운 전국 단위의 유일한 시조문학관이다. 아직 진주를 대표할 만한 문학관이 없어 한국시조문학관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손영희 (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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