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1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16)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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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16)

내 말과 뜻이 일치하다면 내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멋지고 확신에 찬 자신의 삶에 대한 예언이었던가. 더구나 그런 결백한 삶의 용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도대체 이 복잡스러운 삶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양배추처럼 껍질을 벗겨 내보고 싶었었다.

“최 실장을 내가 잘못 봤다 싶었는데 참 잘 왔어. 죽 쒀서 개 좋은 일은 못시키지. 세상 의리가 아무리 똥막대기 신세 됐다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게 사람의 도리 아니야? 개헤엄도 물섶을 아는 사람이 치는 법인데 제깟 것들이 덤벼봐야 사흘 안에 물 말아 먹고 말지. 사업은 뭐 아무나 하나. 아, 막말로 사장 저도 뭘 알아. 저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고 최 실장이나 나 젖혀두고 말할 수 있냐구”

좀 흥분했구나 싶더니 추 여사는 어느새 앞에 놓인 물병을 기울여 꺽꺽해진 목을 축였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않고 있는 양지 옆으로 와서 바싹 다가앉아 들여다보며 우정 낮춘 목소리로 음모를 꾀하듯이 속살거렸다.

“최 실장, 내 말 듣고 일 내버려. 병훈이 어데 있는지 내가 전화 번호 알아놨으니까 오늘 밤 당장 그리로 가. 천하 없이 강한 에미라도 제 자식이 저질러 놓은 일은 받아들이게 돼있어”

양지는 어이없어진 채로 빙긋 웃었다. 추 여사가 잡고 있는 삶의 끈이 참 묘하게도 왜 자신에게로 근접해 있나 싶으니 새삼스레 괴이쩍기도 했다.

“추 여사님은 제가 그렇게도 형편없어 보이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최 실장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잘 알면서 왜 그래”

강 사장이 하도 눈꼴시게 나오니까 그러잖아. 양지는 추 여사의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는 그늘 진 옹벽을 벌써 간파하고 있었다. 철벽같다고 믿었던 우정에 대한 변질로 어지간히 속상해 있는 이 여자는 최 양지라는 이름의 든든한 이음새 하나를 구축해 놓고 싶은 것이었다. 추 여사의 뜻과 같이 이 저택과 회사의 실권자가 되는 일은 양지 자신도 은근히 희망해 왔던 일이다. 못이긴 척 추 여사의 지시대로 따르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유혹적인 생각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지는 추 여사의 하수인 비슷한 모양으로 자신의 앞날을 결정짓고 싶은 뜻은 추호도 없었다. 시치미 떼고 다른 말을 했다.

“아줌마, 주시고 싶다던 밑반찬이나 좀 주세요. 아줌마 말씀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할께요”

“그러지 마라. 아까도 미스 김 그 여우가 다녀갔어. 병훈이 연락 온 것 없느냐고 물어도 내가 안 가르쳐 줬건만. 최 실장, 기회는 잠깐이고 필요한 쪽에서 선수 잡는 거야”

“사실 추 여사님도 아시다시피 병훈 씨는 제 이상형이 아니잖아요”

“저런, 저런, 이상이 어데 밥 주고 옷 줘? 나이가 적어? 나 이런 말하기는 안됐지만 우리 사이니까 하는데 최 실장네 딱한 사정도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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