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이 건국해 532년까지 김해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던 금관가야 왕궁터를 찾기 위한 작업이 재개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의 발굴을 오는 4일 재개한다고 31일 밝혔다.
연구소 측은 지난해 9월 김해 봉황동 316번지 일대 약 5000㎡ 발굴조사를 진행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과 각종 수혈유구(竪穴遺構, 구덩이)를 확인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일제강점기였던 1907년부터 60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돼 패총(貝塚·조개무지), 토성, 건물터 등이 발견됐다.
하지만 금관가야의 도성이나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물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번 발굴 작업은 2018년까지 계속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 발굴조사에서는 주로 통일신라시대와 조선시대 유물이 나왔다”면서 “2∼3m는 파내려가야 금관가야와 관련된 유적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준언기자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의 발굴을 오는 4일 재개한다고 31일 밝혔다.
연구소 측은 지난해 9월 김해 봉황동 316번지 일대 약 5000㎡ 발굴조사를 진행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과 각종 수혈유구(竪穴遺構, 구덩이)를 확인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일제강점기였던 1907년부터 60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돼 패총(貝塚·조개무지), 토성, 건물터 등이 발견됐다.
하지만 금관가야의 도성이나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물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번 발굴 작업은 2018년까지 계속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지난해 발굴조사에서는 주로 통일신라시대와 조선시대 유물이 나왔다”면서 “2∼3m는 파내려가야 금관가야와 관련된 유적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준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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