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19)
여자는 아궁이 불에 타죽거나 우물에 빠져죽게 마련인 병이 이 병이라는 것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병이 고쳐지지 않는 한 평생 이런 모습을 얼마나 복잡한 심사를 가누면서 지켜 보아야할 것이며 그 역시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지.
남편인 병훈이 죽고 얻어진 재산.... . 쓰고 살기 불편하지 않을 재력을 얻는 일은 꿈에서도 염원하던 일 아닌가. 그러나, 그의 병력을 안 이상 병훈과 결혼을 성사시키는 일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짓이다.
양지는 추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뜻밖에도 추 여사는 깔깔 웃었다.
“여사님 정말 그런 분인 줄 몰랐어요. 다시는 여사님 모른 척 하고 살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병훈씨 그런 병 있는 줄 아시면서 저한테 그 사람을 추천하고 몰아붙이는 이유가 뭐죠?”
“야,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 그깟게 병 축에나 드는 거야? 지랄병하다가 물에 빠져 죽고 불에 타죽는다는 옛날 말도 있지만 있는 돈 뒀다 어디 쓸래? 그 좋은 조건으로 예방을 하면 될 거 아냐. 아니할말로 또 설사 무슨 일이 있다한들, 내가 그렇게 못할 짓하는 것도 아니니까, 못 본척, 아니 모른 척 가만히 있어봐. 언젠가는 처녀로 그냥 늙어죽겠다는 계모임도 하는 갑더만, 딱 깨놓고 솔직히 말해서 사업머리는 잘 돌아가는 최 실장이 그만 걸 몰라? 크게 밑지는 일은 아닐 거 아냐”
순간 양지는 추 여사를 때리듯이 전화기를 꽝 쳤다.
“아주머니! 도대체-. 저 이제 절대 아주머니랑 안 만나요. 연 끓을래요. 징그럽고 무서워요. 제가 그렇게 하찮은 물건으로 보이다니. 정말 실망했어요”
양지가 앞서 전화를 끊자 연결된 전화통에 매달리듯 다시 전화를 건 추 여사는 한 술 더 떴다.
“요전앞새 언젠가 내가, 내 딸처럼 최실장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설마 못할 짓 저지를까. 아직 젊으니까 최 실장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 그렇지만 인생살이 그 숭측한 골짝을 젊은이들은 아직 몰라.”
한 술 더 뜬 추 여사는 그깟 게 무슨 대수냐는 듯 한 어투로, 고질병 가진 여러 부잣집 아들들과 가정생활에 지장 없이 잘사는 그들 아내들의 생활상까지 줄줄이 꿰어보였다.
딸같이 생각한다는 말의 정체. 양지의 전신으로 소름이 좍 끼쳤다.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는 의미로 극구 양지를 추천한 불순한 저의에 덜미를 잡힌 더럽고 치사한 기분이다.
착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온 양지에게 대문 앞까지 나서 기다리던 주인댁 여자가 귓속말로 손님이 와서 기다린다며 눈짓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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