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0)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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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0)

정남이 딸의 장래 문제로 뜨악해진 현태와의 거리, 집 나갔다던 호남의 귀가 여부. 거기다 엎친데 덮인 격으로 결별 상태로 까지 간 추여사와 병훈과의 관계. 얽히고설킨 이런 일상사 속에 그나마 자신이 몸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이 기이했다.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힘의 근원인지 곱살피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양지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도 않고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찾아 온 손님은 누구이며 또 무슨 문제를 안고 찾아왔나. 소낙비 설거지로 허둥대는데 불청객으로 들어선 손님격이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마음을 고친 양지가 자취방 앞으로 다가가자 제도권 사람 특유의 굳은 인상을 가진 중년 남자 하나가 문간 턱에서 일어섰다.

기다리다 지친 인상 그대로 신분증을 꺼내 보인다. 인사는 없다. 건성으로 시선을 보내던 양지의 눈이 별안간 확대되며 경련을 일으켰다. ××경찰서. 경찰서라는 글자만이 확대되어 머리카락 끝까지 양지를 긴장시켰다.

동생 최 호남에게서 연락이 왔더냐, 찾아오지는 않았더냐.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이냐. 따위의 의례적인 질문을 하는 모양이었으나 양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구체적으로 들어오는 게 없었다.

습관 된 동작으로 양지는 주인댁을 벗어났다. 남이 들어서 안 되는 소리나 행동을 보일 때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웃부터 먼저 경계하며 외면수습을 했다. 남이 그렇게 무서우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지, 이런 동네 가운데서는 왜 살아. 그런 반발심으로 어지간히 역겨워했던 생활습관이었지만 양지 역시 은연중 주인댁과 한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 이목을 염두에 둔 외면수습으로 그 황당한 불청객을 이끌고 대문을 벗어나 걸었다.

양지가 은연중에 보이는 이 행동은 실은 오래 퇴적된 티끌과 먼지의 소산이나 마찬가지다. 나 개인이 아니라 집안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가문의 구성원이라는 명분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일탈은 무자비하도록 엄혹한 것이 가문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수신제가의 규칙이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그런 행동을 볼 때마다 음습하고 추한 곳 없이, 그 얼마나 밝고 맑은 양심에서 비롯된 긍지인지 늘 불만으로 여겼는데 걷다보니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양지는 적이 놀랍다.

호남이 살인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다. 그것도 시어머니를.

그 엄청난 사실만이 현실감 없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형사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잠겨있던 방의 문을 열게 했다. 바늘로 둔갑한 호남이 숨어있기라도 한 듯 도저히 사람이 숨을 수 없는 공간까지 구석구석 살피고는 안집에는 아무도 없느냐고, 주인댁을 통해서 다 알았을 것을 또 추궁했다. 어쩌면 언니의 자취방을 찾아들지도 모르니까 하루라도 빨리 자수를 시키는 것이 최호남의 죄를 가볍게 하는 것이며 그 방법만이 형제뿐인 애정으로 그 사람을 돕는 길이라 일러놓고 그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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