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3)
그러면서 호남은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 속에 갇혀 지냈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밤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에 있는 나이트클럽으로 가서 밤새 춤추고 노래하는 게 유행이라는 자랑을 했다.
‘간밤에 깨끗이 피로회복을 했기 땜새 낮에는 또 끄떡없이 일도 잘한깨. 돈은 뭣땜에 버는데. 멋지게 쓰고 인생 즐기면서 사는기 목적 아이가. 하하하....’
촉성재배 농산물로 어린이들의 자연교과서를 혼란시켜 놓았다는 비닐하우스. 한때 서울의 가락시장에는 진주에서 올라 온 호박이나 가지 고추 등의 온갖 농산물로 겨울도 봄같은 호황이 무르익었고 이런 추세는 농한기에 있는 전국의 농촌에다 새바람을 불어넣어 비닐하우스농사의 호시절을 유행처럼 불질렀다. 하우스 농사로 은근히 골병든다고 엄살떨면서도 마치 자신이 벌이고 있는 위력이기나 한 듯 신이 난 호남은 제 손으로 번 돈은 저도 쓸 권리 있다며 대금 결제 때마다 어머니의 용돈을 대고 전기밥솥 등 가전제품도 이것저것 빠짐없이 친정으로 사 날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조금도 즐거운 기색을 내지 않고 시름어린 목소리만 흘려보내곤 했다.
‘저것이 저러다가 살림 살 돈 빼돌린다꼬 시어른이랑 주영이 아배 눈에 나믄 어쩔라고 저라는지, 내사 지 해주는 것들 하나도 안 반갑다. 뭔 아아가 성질이 똑 부석 앞에 언내 앉히 논 것 맹키로 맘을 못놓겠응깨.’
양지는 천천히 마을의 외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자신이 주영의 이모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곧장 호남의 집으로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을 들으려면 마을 사람 누군가를 만나봐야 하므로 사람이 있을만한 곳을 살폈지만 얼마를 서성거려도 만나지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비닐하우스로 찾아가야 될까. 정보 얻을 방법을 궁리하는 동안 동네 끝의 비탈밭에서 무언가를 심고 있는 여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양지가 비탈밭 가까이 갔을 때쯤 마늘을 다 심은 여자는 보온용 비닐 씌우는 일을 시작했다. 두루마리 된 검은 비닐 끝을 흙으로 눌러 놓고 저만큼 풀어 나가다 말고 다가드는 양지를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돔바지런하던 행동과는 달리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잠시 서있는 시간도 아까운 듯 양지에게로 보냈던 눈길을 돌려 다시 일손을 잡는데 흙으로 눌러 두었던 비닐 자락이 마침 휘돌아 온 바람결을 타고 벌렁 드날렸다. 혼자 하기로는 몹시 까다로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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