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5)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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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5)

“참 할머니도,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텔레비에도 나고 신문에도 났다카니 알끼요마는 우리 동네서 입에 담기도 부끄럽고 징한 그 사건이 안 났소. 그놈으 할망구 지 명에 못 죽고 그리 뒈진 걸 생각하모 자다가도 살점이 떨려서 내 원. 아, 그 년이. 그래 실수로 천벌 받을 죄를 지었다꼬 손발이 닳게 빌어도 뭐할 낀데 독새대가리 맨키로 낯빤대기 빳빳이 치키 들고 뭐라카는 줄 아우? 지가 일부러 그랬다칸다요”

양지는 속으로 흠칫했다. 그럼 호남이 이미 구금을 당했다는 말인가.

“세상에 그런 인종지 말자가 어데 있소. 그 할망구가 젊어서는 주정뱅이 서방 시집, 늙어서는 자슥 시집, 원도 없이 욕보고 살았소. 가진 재산 없고 기술 없이모 그리 살지 우짤끼요, 뚫린 주딍이라꼬 나오는 대로 악다구니 한다캅디더만 우리 늙은이들은 우리들대로 뼈 빠지게 고생 안했소. 누가 저거더러 용상에 앉히라카요 뭐하요, 거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모 될 것도 잔소리니 간섭이니 늙은이는 입도 뻥긋 못하고 허재비 맹키로 살라카니. 아, 다른 거는 다 또 그렇다 칩시다. 그래, 홀에미 외아들한테 시집 와서 기집아 하나 달랑 놓고 ‘내 가족계획 했소’ 카는 며느리한테 잘했다칼 씨에미가 대국천지에 하나라도 있겄소. 이놈으 세상이 우찌될라꼬 그라는지 그리 된기라요”

노파는 마치 자기의 일이기나 한 듯 억제하지 못한 분노 때문에 연신 떨리는 마른 입술을 혀를 둘러 적시며 말을 이어 붙였다.

“이전 같으모 주리를 틀일이제. 암, 덕석몰이다 몰매를 때리고 주리를 틀고 조리돌림을 시킬 일이고말고. 씨에미 없는 서방이 어데 있다꼬 서방은 좋다캄스로 늙은 씨에미는 자리(자루) 쫀 쥐맨키로 와 그리 밉어하노 말이다. 저그는 다 안 늙을란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내가 너무 말이 많은데, 이해하소. 요새 젊은 년들이 와 그리 하늘 무서븐 줄 모르고 납띠는지, 참 무슨 시변이요. 그래도 우리보다 많이 배운 년들이 배운 표가 어데 있어 그 모양이라. 하긴 사서삼경 읽은 년이 시애비 이마빡에 칼자리 박는다카는 옛말이 있지만 내 이리 엄첩은 꼬라지는 첨이요. 세상이 망할 징조란께”

양지는 누구에겐가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으나 이런 식으로 들은 이야기나마 스스로 추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양지는 가만히 그냥 노파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답을 해보라고는 했지만 노파 역시 대답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가슴에 맺힌 공분을 토해내고 있었을 뿐인지 대답을 채근하지는 않았다.

피우지 않고 너무 오래 들고 있어서 담배는 불이 꺼져 있었다. 서너 번 거퍼 빨아 본 노파는 새로 불을 붙여 물었다. 양지가 듣고 싶은 내용의 전말은 더 이상 노파의 입을 통해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먼저 해놓고 그냥 밭을 떠날 수도 없어 아쉬움 반반인 어중간한 심정으로 앉아있는데 저 아래 밭둑으로 소쿠리를 낀 젊은여자 하나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거 동고에미 아이가?”

노파가 먼저 큰 소리로 여자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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