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6)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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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6)

여자가 얼굴을 들고 이쪽을 올려다보자 다시 말을 던졌다.

“니가 우리 집에 고추나물 갖다놓고 갔쟤? 참 잘 묵었다”

그러다가 아차 싶은 얼굴로 양지를 일별하는 노파. 하도 숭한 일로 심장이 노해서 밥 귀경한지 여러 날 됐다고, 좀 전에 했던 거짓말이 생각난 모양이다.

양지는 지금 그런 것에다 반응을 보일만큼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호남이와 같은 연배니까 정말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저 여자는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눌러앉았다.

소쿠리를 던져 둔 동고에미가 호미를 땅에 꽂으며 일할 채비를 하자 노파가 아래를 향해 소리 질렀다.

“동고에미야, 보리쌀 깨릴 때 됐일낀데 뭔 일할끼라꼬 이 시간에 왔노. 온 김에 물어볼끼 있다. 이리 좀 오이라”

노파와 같이 있는 양지까지 말끄러미 올려다보던 동고에미는 호미로 비탈진 밭둑을 찍으며 더터 올라왔다. 노파는 여자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지루한지 그 사이를 못 참고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집 일이 우떻키 됐는고 니는 뭐 좀 아나?”

“우찌 되기는요. 그래서 저녁 묵고 회관에 모이 갖고 탄원서라도 올리자꼬 몇 간 의논이 됐는데 모르겠어예”

젊은 여자는 낯 선 양지에게 더 많은 눈길을 돌려 살피며 수박 잘 먹게 생긴 뻐드렁니 사이로 조심스럽게 말을 내어놓는다. 그런데 노파에게 건네는 어조 속에는 나물을 가져다주었다는 사람의 말투치고는 다정하기는커녕 시퉁스러움이 배어있음을 양지는 눈치챘다.

무심코 담배를 입술에 대려든 노파가 발딱 고개를 쳐들어 젊은 여자를 쏘아본다.

“이런, 쎄가 만발이나 빠지고 자빠졌다. 아이 이봐라, 니 지끔 한 말이 참말로 에나가? 그 젊은 년 감옥 살리지 말라꼬 젊은 것들이 모돌빼이로 연판장을 낸단 말이가? 하이고매야, 이기 무신 괴변이고. 씨에미 쥑인 그 대역 죄인을-. 마, 치아라. 고금 천년에 그런 일은 없다. 시상에 남으 동네 사람들이 알모 뭐라카겄노. 넘사시럽은깨 입도 뻥긋 말거라. 능컴시롭고 대라진 그 년 낯빤대이 안봤나. 어긋짱도 놓대. 아무리 실수니 일진이 안 좋았네 변명을 해도 쏙에 든 몬점 없이모 절대 그리 안 된다. 그기이 몰상시런 씨사이 소리 잘하고 더펄기릴 때 무인 일 낼 걸 진작 거니채야 되는 긴대 그걸 미차 몰랐던 게 한이다”

“아이고 참 아지매도. 주영옴마 치사만 짜다라 하는 바람에 우리들 눈꼴시게 한 사람이 아지맨데 와 그라십니꺼. 묵달지게 음식대접해 놓고 어른들 웃기디릴라꼬 곡깨이짓 한 걸 또 그리 둘러붙이모 참말로 실망입니더. 우리들 부녀회서는 절대 물색없이 창아리 없는 짓도 안합니더. 남정네 저리 내서라하는 배짱도 있고 일장에 들모 또 얼매나 다구지고 걸찬지 압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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