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그녀의 분홍 립스틱”
[영원한 청춘] “그녀의 분홍 립스틱”
  • 김송이 수습기자
  • 승인 2016.04.13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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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즐길 줄 아는 ‘꽃할매’ 이명숙씨
 


산청가는 길은 즐거웠다. 도로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 없었다.

오늘의 주인공 이명숙(77·산청군)씨. 그녀는 지난 2월 산청군에서 모집한 실버합창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꽤 즐겼어요”

그녀는 월등한 실력은 아니지만 중학생 시절에도 노래가 좋아 학교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이번 실버합창단원을 뽑는 오디션에서도 ‘울며 헤진 부산항’을 멋들어지게 부르며 당당히 합격했다.

합창단 연습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여. 소프라노 파트를 맡은 그녀는 연습이 있는 날에는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는것을 빼 놓지 않는다.

“높은 음을 내야 하니 뱃심이 필요하지요(웃음). 힘껏 연습하고 있어요.”

산청군 실버합창단은 오는 9월 산청 장애인복지관 개관식에서 첫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래서 실버합창단원 모두가 매일같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연습 중인 곡은 폭넓은 연령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 ‘백세 인생’, 그리고 ‘산청 아리랑’이다.

특히 트로트 장르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소프라노, 메조, 테너로 구성된 실버합창단이 부르니 원곡과는 또다른 색다른 화음을 자랑한다.

 
▲ 영원한 청춘, 산청실버합창단 이명숙 할머니


“공무원인 딸과 사위를 따라 산청에 온 지 벌써 20년이 됐네요.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 살기 참 좋아요. 합창단을 시작하면서 제일 좋은 건 산청지역 사람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같은 지역에 살아도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겠어요”

그녀가 전하는 산청군 실버합창단의 팀워크는 그야말로 최고다.

“단원들끼리 돌아가며 휴대전화로 지휘자 선생님 말씀을 녹음해요. 수업 중에 연습한 노래도 녹음해 놨다가 서로서로 보내주거든요. 그럼 문자로 받아서 밥하면서, 설거지하면서도 듣는 답니다”

실제 동료 단원들과 합창연습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이뻐보였다. 그 누구보다 꼼꼼하게 지휘자의 말을 귀 기울이고 필기를 했다.

어디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마지막 음을 몇 박자까지 끌어야 하는지 등 배우는 곡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실버합창단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엿볼수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악보 보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워낙 지휘자님이나 강사 선생님들이 지도를 잘 해주셔서 무리 없이 진도를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쉽지는 않지만 함께하는 동료 실버단원들이 있어 즐겁다고 했다.

그녀는 “조만간 군청에서 합창단복을 맞춰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산청군과 군청 직원분들의 많은 도움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재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는 그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다.

“좋은 옷, 좋은 화장품 아껴뒀다 뭐 하겠어요. 요즘 날이 얼마나 좋아. 일부러라도 더 좋은 옷 찾아 꺼내 입고 주책맞아 보여도 꽃분홍 립스틱도 한번 더 바르고 하는 거지요(웃음)”

요즘에는 부쩍 운동도 더 열심히 한다고 했다.

“여기 살아보니 산청군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 위해서 이것저것 많이 해요. 근처 문화원에만 가도 인형극이나 퀼트도 배울 수 있고,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체력이 되는 한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노년의 삶도 엄연히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이라 말하는 이명숙씨. 집에서 홀로 무기력과 싸우는 동년배들에게 노래의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는 그녀의 입술에 발린 분홍 립스틱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김송이 수습기자 song2@gnnews.co.kr
▲ 영원한 청춘, 산청실버합창단 이명숙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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