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7)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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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7)

화가 나서 펄펄 거리는 노파의 태도가 우세스러운지 양지를 의식한 동고에미라는 여자가 앞을 막아 그 동안 호남이 했던 역할을 들먹이는 대로 노파는 할 말을 잃고 온 얼굴의 근육까지 파들파들 경련을 일으켰다.

처지도 잊어버리고 흥미를 느끼게 노파와 젊은여자의 설전은 강한 자기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양지는 어느새 종이와 볼펜을 꺼내들고 있었다.

노파의 짐작대로 취재기자의 모양을 내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거저 지나가는 나그네인 것을 아는 순간 설전은 시부저기 중단되고 말 것을 염려함이다.

아무리 물고 뜯어보았자 덕 될 것 없는 일을 가지고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그들은 한가하지 않은 농사꾼들이다.

무언가를 끄적거리기도 하다가 열심히 두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양지의 동정을 간간히 살피기도 하면서 두 여자의 설전은 좀 더 격렬하고 심도 있는 방향으로 흘렀다.

머리꼭지가 허연 늙은이와 어수선하고 불결한 겉모습도 이해되는 바쁜 젊은 여자가 남의 일로 다투고 있는 풍경은 우화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처럼 서로간의 팽팽한 대립감은 얼마나 깊고 오래 쌓인 신구(新舊) 사이의 퇴적된 감정의 발산인가.

“그렇지예, 누가 봐도 결과는 용서할 수 없게 됐지만 아지매 역시 썽나서 아아들 한 번 안 때리고 자슥 키았십니꺼”

“아무리 썽나도 얼른없다. 자슥은 자슥이고 씨에미는 씨에미 아이가, 강상에 법무할 그런 짓이 어데있노. 말이믄 다 말인 줄 알고 니 지끔 오데다 그런 비유로 하노?”

“언지예, 일이 사실은 안 그렇다 그 말 아입니꺼. 글안해도 썽이 머리끝꺼정 뻗어있는데 간 데마다 막아서서 사람 약 올리보이소, 시어머니 아니라 하느님이라캐도 손가락총 놓고 안 대드는가. 말이 났으니 말이제 요새 세상에 주영엄마 겉은 며느리도 없십니더. 그 소리는 아지매도 서울 아들네 집에 가싰다 올 때마다 주영할매보고 니 며느리 겉은 사람 없으니 우받들고 살라캤던 말 아입니꺼”

“에레이 순, 아픈 눈이 머잖았다. 아 인마야, 너거는 씨에미 안 될겄가? 듣자듣자 한께 그년 끄내끼도 아이고, 니 말 그 다 어폐가 있어도 한참 많이 있다. 요새 세상이 우떤 세상 말고? 며느리 손에 안 죽을라모 어른은 몽지리 자슥 끈 이까놓는 즉시 자결이라도 해서 없어져야 된다 이 말이가 뭐꼬?”

“참 아지매도, 몰라서 그런거 아임서 와 그리 자꾸 억불로 나가십니꺼.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시집 산다카능거 보이소. 세상이 달라진 걸 퍼뜩 눈치를 못채이꺼내 아지매도 개밥에 도토리 맨키로 잘 사는 아들 집에도 몬가고 여어 혼자 떨어져 사시는 거 아입니꺼. 돌아가신 어른보고 이런 소리하기는 뭣하지만, 바른 말해서 주영이 할매도 인자는 어지간히 좀 꾀씹고 점잖은 행신을 했음사 이런 일도 안 생깄지예. 주영어매 말 들은 깨 할매가 막 머리끄뎅이 끌라꼬 달라드는 걸 얼찜에 확 뿌리친 거 뿐이라카데요. 어른이 그리 나오는데 있는 힘 놔뚜고 젊은 사람이 잠자코 머리통 대놓고 당하고 있겄십니꺼. 없지예. 내라도 확 뿌리치겠십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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