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8)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28)

겉모습만 어수룩했지 역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이다. 양지는 새삼스럽게 젊은 여자의 거동을 눈여겨보았다.

성깔을 죽이는 방편으로 헐렁 벗어서 탈탈 털었다 다시 쓰는 회색챙모자 아래 발갛게 익다 못해 거무스름하게 변한 피부와 어울린 거칠게 출렁거리는 눈빛은 흔히 순박하다고 표현했던 옛날의 시골 아낙네와는 다른 무엇을 부풀게 내장하고 있었다.

언행에도 분명 어떤 절도가 있었다. 듣기 좋은 말을 포착하기 위한 양지의 눈길은 자연스레 여자의 일거일동으로 쏠렸다.

“싸잡아서 늙은이들 욕하는 거는 알것다만 얼척없다. 아이구마, 싸개라. 그래서 세상이 이리 좋아졌단 말이가 뭐꼬? 돈 잘 번다꼬 한 때 밥 두그륵 안묵는다. 시에미한테 막 대들고 시에미 무식하다꼬 말도 안 걸고 눈 한 번 안 마주치는 며느리년들 행실은 그라모 잘하는 기란 말이가”

“그기 꼭 잘잘 못을 따지는 거 보다 대화가 안통하모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지 예. 주영옴마야 내 알데끼 아새부터 그런 사람 아임니더. 어른들이 할 말 있음사 젊은 사람들도 할 말은 안있겟십니꺼. 감정도 있고요. 똑 같이 여잔데 나이 쪼끔 더 묵고 늙고 젊었다카능거 때미내 이 세상 며느리들이 얼매나 구박 받고 살았심니꺼”

“시집살이야 너그만 그랬나. 우리는 더했다. 시에미한테 뺨을 맞고 쫓겨나서 밥을 굶어도 어른 말씀이라카모 하늘겉이 복종하고 받들면서 살았제. 너그 맨치로 이리 천하에 부상년들 짓은 안했다”

“그기야 또 그때 세상 이야그지예”

“업시, 그런 소리 하지마라. 그라모 우리는 너무나 섧다. 요새 젊은 년들은 용상에 앉아 매화태롱이제. 우리야 그런 세상 꿈이나 꾸고 시집 살았더나. 나가라 소리 안 하모 흙바닥에 코 박고 살았제. 없는 살림에 식구는 또 와그리 많던고, 새복부터 일어나서 쎄빠지게 도구방아 때끼서 꼽쌀미밥 한 솥을 꺼들막하게 해도 웃밥 퍼서 층층시하 어른들 모시고 씨동상 씨누우 밥그릇 벤또 다 챙기서 싸고 나모 밥이나 있었던가. 푹 퍼진 눌은밥 쪼끔 있는 거 입에 옇을라카모 또 눈이 까맣게 쳐다보는 이놈의 개는 또 우짤끼고. 밥을 마음대로 배 부리기 묵어봤나, 의복을 빛나기 입어봤나, 분단장 곱기 하고 서방 각시 다정하게 바깥출입을 한 분 해봤나, 층층시하 시집살이 다하고 나니 남은 기 서방 시집이고 자슥시집이라, 그런 수악한 세월 다 넴기고 난께 어느덧 황천길이 낼 모레라. 팔십 평생을 살아도 내 날이야 하고 산 날이 하룬들 있었던 줄 아나”

“그래예, 그런 거 다 겪어보지는 못해도 짐작은 하지 예, 그래서 우리가 잘해드릴라 안캤십니꺼. 그런께 이번 일은 대놓고 욕만 할게 아니라, 엔간히 머석했이모 거석했겄나 동네어른들이 좀 깊이 반성해 볼 일이라예”

“참말로 애터진다. 오냐 그래, 가재는 게 편이라꼬 곧 죽어도 그년 편이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