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스톡데일 패러독스
[경일칼럼] 스톡데일 패러독스
  • 경남일보
  • 승인 2016.04.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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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학장)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이 12.5%로 치솟아 1996년 6월 통계작성 방법 변경 이후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이태백’이 아니라 ‘이구백’(이십대의 90%가 백수)이니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같은 섬뜩하게 진화한 신조어들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경제활동을 해야 할 나이나 때에 도래한 청년들이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이나 기대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나 취업을 아예 포기해 무기력한 실업상태로 방치된 정도가 실업률이라는 수치로 산출되고, 위와 같은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유행어에 의해 일종의 민심으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고로 각 정당들이 주요 정책공약으로 청년실업 해소에 관련된 사안에 저마다 상당한 비중을 두고 나름 독자적인 해결방안을 자신 있게 제시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전례를 볼 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률을 낮추는 일이 그리 쉽지 않으며 일단 한번 시작된 하향곡선은 대체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오래 지속돼 왔다는 것이 경험적인 사실이다. 잘 나가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가 직면한 상황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의 경우도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끌며 청년실업을 비롯한 경제회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온갖 대책을 부심하며 시행해 왔지만 이것이 도마 위에 무 썰 듯 단방에 해결되는 일은 절대로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정책공약 문서에 멋진 서체로 새겨 놓은 낙관적인 대책에 희망을 걸고 조만간 기다리면 저절로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목매어서도 안 될 일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용어가 있다.

월남전에서 8년간 포로로 잡혔지만 결국 살아남아 생환한 스톡데일 장군이 경험한 실화에서 생긴 말이다. 그와 함께 포로가 된 병사들 중 가장 먼저 죽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나 비관주의자보다 오히려 낙관주의자였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풀려나겠지’하고 상황을 막연하게 낙관하던 병사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을, 부활절이 지나면 다음 크리스마스 하는 식으로 상황을 낙관하지만, 한번 두번 그 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심 속에 삶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반면 스톡데일 장군은 “우린 크리스마스 때가 되어도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그때를 대비하며 오늘을 살아야 해”라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반드시 포로생활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서도, 결코 그것이 쉽게, 그냥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참 믿음임을 반증하는 얘기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폴리텍대학은 개인의 비용부담 없이 정부 예산으로 다양한 기술교육 과정을 거쳐 기업현장의 직장인으로 연계되는 대한민국의 대표 직업교육대학이다. 우리대학 학생들의 대부분은 저마다 실업이라는 아픔을 체험하면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대기업 고층빌딩에서 하얀 와이셔츠를 걸친 20대 실장으로 근무한다는 것이 결코 현실이 아님을 깨닫고 긴 호흡으로 인생과 대면하고자 직업교육 현장에 뛰어든 현명하고 용감한 젊은이들이다.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거울에 비친 나의 진짜 모습을 보면서 헛된 꿈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 일이다. 기술을 가진 자가 우대받는 세상이 곧 올 것이다. 폴리텍대학에서 기술의 가치, 땀의 가치를 실현해 모두 성공하기 바란다.

 
박문수 (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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