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3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31)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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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31)

참견을 하며 끼어들 처지도 아니었고 관계없는 사람 마냥 태연히 듣고 있자니 줄거리는 거기서 거기인데 공깃돌 주고받듯이 실랑이만 계속된다.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양지가 떠나자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뒤따라 왔다.

“아지매, 저 사람은 누군디예? 안면이 어데서 많이 본 사람 같은 데”

호남과는 자매 같지 않게 각 낯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다. 호남과 주영이랑 셋이 얼굴을 맞대면 그렇다 싶게 닮은 구석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시야에서 얼른 벗어나기 위해 길도 아닌 높은 밭둑을 구르듯이 미끄러져 내렸다.

노파의, 순리대로 살아야 된다는 말이 겨냥하고 던진 비수처럼 양지의 뒤통수를 찔렀다. 문득, 돌아가신 주영이 할머니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새며느리로 들어가는 날부터 호남은 분명 꼬리를 감춘 여우였지 좋은 며느리는 못되었을 것이다. 양지 역시 과수댁의 외아들과 호남이 결혼을 서두를 때부터 축하보다는 아심찮음이 더 앞섰다. 사귀는 남자가 체격도 심성도 너무 약질이어서 너의 상대로는 걸맞지 않다고 하자 호남이 스스로 뱉었던 말이 있었다.

‘엄마 맹키로 빙신 겉이 당하고만 안살라꼬 일부러 내 말 잘 듣는 얼빵한 사람을 꼬싯다 와’

그리고 호남은 ‘임신’ 한 몸이라고 속여서 반대하는 양쪽 집 가족들의 입을 막고 혼인 승낙까지 단번에 받아냈던 것이다.

‘저게 그래도 시집가서 제 살림 사니깨 소견 통이 쪼매 열리는지, 짝 소리 없이 잘 사는 것 보래’

어머니의 입술에서 안도의 한숨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소심한 남편을 설득해서 호남의 단산 수술은 행해졌다. 이제는 우리 집구석 문 닫았네. 쏘(沼) 팠네.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는 사돈마나님 앞에 꿇어앉아 죽을 죄 지은 죄인이 되어 어머니는 빌었다. 그런 어머니를 끌어내면서 내가 뭐 잘못했어, 제발 그런 못난 짓 좀 그만 하라고 호남은 되레 어머니를 구박했다.

‘자식 낳아서 이 모양으로 고생시킬 바에는 차라리 하나도 안 낳는 게 서로를 위해서 적선하는 방법이었을 끼다’

흡족하게 잘 가르치지 못한 두 늙은이의 자격지심을 향해 공격의 화살을 휘날리며 호남은 더욱 당당하고 씩씩해졌다. 그녀는 이미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서 열 아들 부럽잖게 잘 키우는 쪽으로 길을 잡은 젊은에미였다. 그러나 며느리가 워낙 잘하니까 잠잠하게 잦아들었던 그녀 시어머니의 욕심봉지를 터뜨리고 명을 단축시킨 것은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득남에서 비롯된 불상사였다.

‘내 입장은 쪼끔도 생각 안 해주고 그 주책없는 영감탕구가 세상에, 그 소리를 듣고 할망구가 환장 안하겠어?’

하지만 양지는 호남의 이죽거림에 따라 굳이 따지자면 이번 일의 원인 제공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가책으로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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