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3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36)
  • 경남일보
  • 승인 2016.03.29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9 (136)

누가 맞대놓고 비난이라도 한다면 자신과는 관계없는 윗대 조상들의 잘못일 뿐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어릴 때부터 그녀는 목격해 왔다. 자기네들끼리 속살거리며 입을 삐죽거리다가도 막상 당사자 앞에서는 씻은 듯이 말문을 닫고 시치미 떼는 것이 이웃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 흉을 보았느냐고 따지면 따진 사람만 더 웃음거리가 된다.

양지도 골목에서 또는 우물가에서 흔히 제가 가면 말을 뚝 끊고 딴청부리는 경우를 목격했다. 어느 해였던지 정확한 기억은 할 수 없고 동네 초입에 있는 입 큰 덕순네 담장 밑에서였던 건 분명했다.

목소리로 보아 덕순엄마, 현자엄마, 경미고모, 서넛 되었다. 야 인마들아,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단다. 제발 목소리 좀 낮차라. 덕순엄마의 주의로 조금 낮아졌던 목소리는 화제의 감칠맛을 고조시키며 다시 담장 밖까지 펄펄 넘어 나왔다.

“그 집 뒤안에 있는 돌배나무 그게 영물이람서?”

돌배나무가 영물.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상한 예감에 쾌남은 묶인 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고 말았다.

화제로 지칭될만한 돌배나무가 있는 집은 쾌남네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돌배나무는 많은 나이와 함께 온전한 형상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 벼락을 맞아서 우듬지가 잘려나가기도 했고 뿌리에서 이삼십 센티 정도 높이에는 베려다 만 상처로 두툼하게 아물어진 톱자국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열매를 거의 맺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반절이나 죽어있는 삭은 목질의 틈새에다 집을 지은 개미떼만 우글거리고 있다. 뿌리 부분에 새순이 몇 개 돋아서 자라고 있지만 그게 언제 자라서 전처럼 큰 나무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조차도 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보기 흉한 양으로 치면 벌써 없애버리기라도 했어야하지만 왠지 아버지나 어머니는 그에 대한 해결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는데 함묵하고 있는 그들의 기색에는 왠지 금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릴 때 더러 그 부근으로 소꿉놀이에 쓸 사금파리를 주우러 얼씬거릴라치면 어머니는 밭은 손짓으로 에비, 에비, 하면서 접근을 금지시켰다. 어머니로 인한 그 막연한 두려움은 엄청나게 큰 구렁이가 아니면 또 무엇일까, 상상하는 것만도 두려워서 그 곳을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으로 무시해 왔던 돌배나무 였다.

그 밖에도 집안의 여기저기에는 보고도 못 본척해야 되는 것들이 많았다. 후미진 대밭 속의 움집에는 색이 낡은 가마 틀이나 먼지로 빚은 듯이 세월의 때를 껴입은 옹기들이며 줄로 매어진 녹슨 궤짝들이 있었다. 허물어진 아래채에 남아있는 벽장이며 아버지가 지붕을 급조해 올렸다가 근년에는 아예 없애버린 곳간이며 마구간의 더그매 위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음습한 물건들이 무진장 많이 남아있었다.

그날도 이웃 여자들의 수군거림은 쾌남이네의 돌배나무에 말전주거리를 두고 맴돌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