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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44>거제 산방산청마 유치환의 고향…비 젖은 꽃같은 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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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19  22: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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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오름길에서 만난 산방산의 신록.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알 그는’.

청마 유치환(1908∼1967)은 시 ‘깃발’을 통해 이상향에 대한 향수와 비애, 이념에 대한 향수와 좌절을 표현했다. 깃대에 구속된 깃발 인생, 세상의 상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처절하게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나 결국 구속된 깃발일 뿐, 푸른 이상향은 하늘 저 멀리에 있다. 인간이 갖기 어려운 현실의 공허, 그 앞에서 머리를 떨어뜨린다.

청마는 거제시 둔덕면 산방산 기슭 방하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뒤 15세까지 통영에서 살다형 유치진이 있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45년 통영여중, 1948년 경남고, 1951년 통영여고 교사에 부임했다. 이듬해 함양 안의중학교에 재직 후, 1960년대 초부터 경주 부산 등지에서 교장을 역임했다. 1967년 겨울의 끝자락 부산남여상 교장으로 있던 그는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좌천동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생애동안 시집·수상록 14권을 발간했다.

생전에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고향 산등성이에 묻히리라 소원했지만 타 지역에 떠돌다가 1990년 초에야 고향 산록에 잠들었다. 그의 비원(悲願)은 무엇이었을까.

청마의 고향이면서 묻힌 곳이 산방산(507m)이다. 산 모양이 ‘뫼 산(山)’ 자와 비슷하고 꽃같이 아름답다 하여 산방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등산로, 방하마을 청마기념관→청마의 길→청마묘소→갈림길→임도→전주이씨 무덤→봉우리1.2.3→부처굴 갈림길→무지개 터 갈림길→오색토 지대→정상(반환)→부처굴→보현사→산방산비원→방하마을 원점회귀. 5km 휴식 포함 5시간 10분 소요.

 
   
▲ 들녘에 세워진 청마상


▲오전 10시 24분, 방하마을 청마기념관 앞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태생지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2008년 1월 개관했다. 생가가 복원돼 있고 시비와 유치환 청동상이 있다. 마을 중앙 세력이 왕성한 350년 수령의 팽나무가 인상적이다. 옆 논길을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산 쪽으로 향한다. 청마묘소까지 갈 수 있는 1.3km 청마의 길이다. 중간에 시비와 휴식처인 청령정이 있다.

자연석 시비 10여개가 줄지어 서 있는 광장에서 100m떨어진 곳에 시인의 무덤이 있다. 출발 후 30분이면 닿는다.

무덤경계인 철망 옆길을 따라 오른다. 산행 안내 리본만 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나, 등산로가 명확하지 않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실 이 길은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니다. 바른 길은 묘소 광장 앞에서 왔던 길을 50여m 정도 되돌아 간 뒤 오른쪽 산으로 올라야 한다.

오전 11시 10분,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산행리본이 달려 있는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아야한다. 가끔 등산객이 길을 잃었다는 산행후기가 인터넷에 올라오는데 이는 산행안내 리본을 보지 않고 본능적으로 높은 곳으로 오르려만 하고, 또 꺾인 길을 외면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10여분 정도 고도를 낮추면 숲이 우거진 임도가 나타난다. 왼쪽 방하마을과 오른쪽 상죽전마을을 연결하는 임도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오름길, 이정표는 산방산 1.3km를 가리킨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이슬비와 짙은 안개는 산행을 더디게 했다. 비에 젖은 몸에 땀이 뒤섞여 바짓가랑이가 칭칭 감기는 느낌이었다. 축축한 산행에 어깨가 짓눌리고 내딛는 발길도 무거웠다.

 
   
▲ 마을 중앙 350년 수령의 팽나무


낮 12시, 전주이씨 무덤 앞을 가로 질러 두 세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다음 봉우리가 정상인줄 알고 올라도 다음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래서 힘들다고 느낄 즈음, 잠시 옅은 햇살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때 맞춰 초록의 이파리를 왕관처럼 달고 있는 고목들이 춤을 추었다. 안개 속을 뚫고 들어온 햇살과 바람이 싱그러운 산방산 신록을 조명해 주었다. 그렇게 스쳐간 산의 미소에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정상 다 달았을 무렵, 부처굴 갈림길을 넘고 등성이에 올라서면 또 무지개 터 갈림길이다. 무지개 터는 등산로에서 100m벗어난 지점의 작은 공간이다. 마을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제단 아래에는 벼락바위와 약수터, 고려 원종 때 왜구 침범 시 옥(玉)씨 일가가 피난을 했다는 옥굴, 그들이 피란생활을 하면서 베를 짰다는 베틀굴이 있다. 무지개 터 갈림길을 뒤로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몇 발자국 오르지 않아 눈길이 머무는 오색토 흙길을 만난다. 봄철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가 수 억년 쌓이고 쌓여 지층을 이룬 곳인데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희고 검은 오색의 흙층으로 구성돼 있다. 미세한 황사가 빗물이나 바람에 씻겨 버릴 텐데 지층이 됐다니 믿어지지 않지만 과학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색토가 나오는 지역을 명당으로 친다. 전직 대통령의 묘소가 오색토 명당임이 알려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곳에도 비슷한 전설이 남아 있다. 어떤 세력가가 보름달이 뜨는 어느 날 이곳에 묘를 써 자손들이 흥했다. 그러나 마을에 가뭄이 들자 산방산에 묘를 쓴 것이 이유로 지목돼 결국 묘가 파헤쳐졌다고 한다. 가뭄으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무지개 터에 올라왔던 사람들이 오색토 명당에 쓴 묘를 보고 심사가 뒤틀렸을까. 무지개 터 기우제와 오색토 명당이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산방산 정상 오름길에서 만난 암릉과 신록.


오후 1시 5분, 정상 너럭바위지대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개었다. 뫼 산(山)산처럼 생긴 산세와 기암괴석, 전망까지 좋아 금강산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맑은 날 쪽빛 남해를 배경으로 점점이 떠 있는 욕지도 한산도 비진도 등 다도해의 풍광이 절경이다. 안개때문에 아무 것도 볼수 없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정상에선 반환해 오색토 지대→무지개 터 갈림길→부처굴(삼신굴)로 내려서야 한다. 오후 2시 40분, 부처굴은 동쪽을 바라보는 경주 토함산·사천 봉명산 석굴과는 달리 서쪽을 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래서 해질 녘 석굴 안까지 석양빛이 들어온다고 한다. 애초 신라시대 때부터 굴 아래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내부에 삼존석조좌불이 있었으나 해방 후 석가모니불의 머리가 훼손되고 나머지도 도난당했다고 한다.

부처굴을 벗어나면 산 사면을 따라 넓은 암릉이 발달해 있다. 험해 데크를 설치해 등산로를 정비해 놓았다. 비온 뒤 갠 날씨에도 바위와 나무뿌리로 인한 산길은 미끄러워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임도를 만나면 산을 벗어난다. 왼쪽 200m 지점 보현사를 뒤로 하고 오른쪽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야생초와 수목의 천국 산방산비원을 만날 수 있다.

김덕훈 원장(76)은 30년 전 이곳에 부지 10만㎡(3만평)을 구입하고 10여 년간 준비 끝에 2007년 산방산 비원을 개장했다. 비비추 인동초 수국 메발톱 꽃창포 복수초 황금동백 물 양귀비 등 1000여 종의 야생화와 희귀식물이 사계절 꽃을 피운다. 거제도에 자생하고 있는 모든 야생화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인위적인 냄새가 나지않도록 원래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미를 살렸다. 다시 청마의 향취가 도는 기념관에 돌아왔을 때 오후 3시 20분이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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