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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남지 개비리길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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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3  22: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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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본류와 남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길, 더불어 사는 삶의 터전.

필자의 사주팔자에 고과살(孤寡煞)이 끼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필자에게 낀 살을 없애기 위해 길에다 팔았는데, 늘 사람들이 붐비는 길처럼 외롭지 않고 길고 먼 길처럼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길에다 필자를 의탁하고는 섣달그믐 밤 자정 넘어 새해가 시작되는 시각에 필자를 의탁한 길에 가서 촛불을 켜 놓은 뒤 준비한 떡과 과일을 놓고 비손을 하셨다. 그것이 주효했을까? 필자가 일생동안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해 온 것을 보면,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외로움 병’인 고과살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것이 분명하다. 길! 도로라는 이름보다는 길이라는 이름이 훨씬 정감이 가고 향토색 짙은 느낌이 든다. 길을 걸으면 잡념에서 벗어나 무념무상에 잠길 때도 있고,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길섶에 난 풀과 나무, 먼발치에 보이는 풍경이 탐방객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어 주고, 연록의 세상이 삶의 활력소가 될 때도 있다. 이번에는 경남과기대 시창작강좌 수강생들과 함께 ‘길’에서 시의 소재와 더불어 창의적 사고를 찾고, 삶의 활력소도 얻기 위해 창녕 남지에 있는 개비리길로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을 떠났다.


 

   
▲ 개비리길 유래를 담은 안내판


모성이 일구어낸 기적의 개비리길

영아지마을에 사는 황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였다. 힘이 약했던 조리쟁이는 어미젖이 10개밖에 되지 않아 젖먹이 경쟁에서 항상 밀려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했다. 10마리는 남지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작고 야윈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등(山) 너머 용산리로 시집간 할아버지의 딸이 친정에 왔다가면서 조리쟁이를 키우겠다며 시집으로 데려갔다. 며칠 후 딸은 깜짝 놀랐다. 친정의 누렁이가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누렁이가 하루에 한 번씩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여전히 누렁이는 용산 마을에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은 누렁이가 어느 길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누렁이 뒤를 따라갔는데 누렁이는 낙동강을 따라 있는 절벽면의 급경사로 인하여 눈이 쌓이지 않는 곳을 골라 다녔던 것을 확인했다. ‘개가 다닌 비리(절벽)’라 하여 ‘개비리’라는 길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개비리길, 그 이름부터 걷고 싶은 호기심을 갖게 했다. 낙동강 남지 개비리길은 남지읍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에 이르는 낙동강가 벼랑을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길이다. 트래킹 총 거리는 6.4km이며,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용산리주차장(창나루주차장)에서 출발해서→용산양수장→올달샘 쉼터→죽림 쉼터→야생화 쉼터→영아지마을→영아지전망대→영아지 쉼터→목동이쓴이름돌→마분산→창나루전망대→창나루주차장으로 순환하는 트레킹 코스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개비리길은 낙동강변을 따라 난 평탄한 길이라 누구나가 쉽게 트레킹을 할 수 있지만,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이어져 있어 때론 발밑을 조심해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길 아래로 낙동강이 아름다운 풍경을 펼치며 흐르고, 여느 길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아기자기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스런 인공의 멋이 가미되지 않은 흙길이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건강을 위해 흙융단을 깔아놓은 길을 맨발로 트레킹하는 탐방객들도 더러 볼 수 있었다.


 

   
▲ 수십 미터 낭떠러지 위의 개비리길



강물도 숨죽여 흐르는 역사의 현장

흙길, 폭신폭신한 흙빛 융단을 걷는 기분이다. 시멘트나 인공의 돌을 이용한 길이 아니라 길이 지닌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위태로운 벼랑에는 하얀 로프를 말뚝에 연결한 안전 난간을 설치해 놓은 것과 운치를 더하기 위해 군데군데 강을 마주한 쉼터와 정자를 만들어 놓고, 잠시 쉬면서 강물과 숲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정취에 흠뻑 젖어들게 해놓은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는 쳐들어오는 왜병을 막기 위해 자신의 말에다 벌통을 매달아 적진에 돌진케 했는데, 벌통이 말의 뜀박질에 흔들리자 벌들이 쏟아져 나와 왜군을 닥치는 대로 쏘아대니 적진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며 큰 혼란이 일어났고 이 혼란스런 틈을 타서 의병군이 왜적을 공격하여 물리쳤는데,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현장이다. 안타깝게도 장군의 말은 왜적에게 사살되었는데, 뒤에 말의 공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170m 정도 되는 산의 정상에 말의 무덤인 큰 고분이 있어 이 산을 마분산(馬墳山)이라 부른다. 이 마분산은 6.25전쟁 때에도 국군(유엔군 포함)과 인민군이 일대 격전을 벌인 곳으로 여기서 인민군이 섬멸되고, 국군이 북진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오게 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곳곳에 있는 안내문 앞에서 잠깐 땀을 식히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개비리길을 걷는 맛과 깊이를 더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울창한 대숲 사이를 걸으며 시원한 바람을 쐬는 죽림 쉼터와 토끼가 눈비비고 와서 물을 마신 옹달샘 쉼터, 사철 들꽃들이 머무는 야생화 쉼터 등 강과 산에 어울리도록 자연스럽게 꾸며놓은 것이 개비리길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마분산 능선으로 난 솔숲길을 걸을 때면 낙동강 본류와 지류인 남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도 볼 수 있고, 낙동강 수변공원을 따라 조성된 유채밭도 탐방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모성이 만든 길, 어미가 열어놓은 길섶에 새겨진 이 땅의 역사, 길이 펼쳐놓은 소박한 풍경이 어우러져 스토리를 엮어놓은 곳이 개비리길이다. 새끼와 자식에겐 어미와 어머니가 생명의 창조주요, 울타리며, 나라다. 어머니와 나라는 항상 그리움이고, 사랑이며, 아픔이다. 개비리길 이름의 유래를 가슴에 새기며 길을 걷노라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 손끝에서 모성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휜 길모퉁이마다 만나는 역사의 현장에서 나라사랑과 이 땅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아들의 외로움을 덜어서 길처럼 다정하게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어머니의 길, 길은 곧 사랑이고 치유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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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객들이 쉬어가는 낙동강변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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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길로 난 호젓한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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