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4)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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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4)

마귀처럼 험악한 인상을 지은 아버지는 두 손 비비며 잘못했다고 엎드린 명자아버지를 차고 때리고 짓밟았다. 손에 잡히는 몽둥이로 내려치다 직성이 안 풀리자 곁에 있는 금간 소금단지를 메치기도 했다. 피가 흘러도 도망갈 힘이 없이 쓰러진 채 명자아버지가 헉헉거릴 때까지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 틈에 언니가 양지의 손을 끌었다. 도망가자.

언니가 끄는 손에 매달려 생쥐처럼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온 양지 자매들마저 아버지는 그냥두지 않았다.

“또 와 저라꼬. 참 엉글쯩 나서 죽겄네”

남편이 날뛰는 이유를 알지 못한 어머니는 평소처럼 주눅 든 손짓으로 딸들이 숨어있는 사당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더라고 이실직고 했다. 설마 조상님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거기까지야 싶었던 딸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머리끄덩이 끌고 나온 성남을 패대기 친 아버지는 발발 떨고 있는 양지까지 싸잡아 발길로 걷어차고 성남에 대한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야, 이 웬수덩거리 년들아. 나가서 뒈져라. 그 놈이 어떤 흑심으로 그런 걸 퍼 멕이는지 설사 입주딩이 벌리고 퍼부어도 안 쳐묵어야 될 거 아이가. 애비가 그 얼비같은 놈한테 하는 거 보고도 몰라. 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년들로 그냥 한 주먹에 콱 다 쎄리쥑이 삘끼다!”

자신이 지칠때까지 아버지의 화풀이는 계속되었다.

참 많은 세월이 흐른 옛일들이지만 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양지는 쓴 몸짓으로 살피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자라난 환경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 어디 식물이나 동물뿐일까. 사람의 영혼은 더 흠뻑 그 영향을 흡수한대로 평생 안고 앓아야 되는 내상을 갖게 되어있다.



물로 가신 솥에다 맹물을 붓고, 아궁이 가득 군불을 밀어 넣고 있는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쫓아 마당으로 나오자 집을 둘러보고 있던 사오십 전후의 남자 셋이 양지를 발견하고는 뜻밖인양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 중 제일 퉁퉁해 보이는 남자가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양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린 최 태복 씨랑 잘 아는 사람들이요. 집 구경 좀 하러 왔수”

가자 가자, 뭐 죄 지었냐. 온 김에 둘러보고나 가야지. 대답도 없이, 빤한 눈길로 바라보는 양지를 의식해서 잠시 좌중지난을 보이던 사람들이 뚱뚱한 남자의 통변으로 용기를 얻었는지 갖고 왔던 목적 달성을 위해 집안 곳곳을 기웃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은 지는 내가 알기로 한 백 년 남짓 그리 빽기 안 됐는디 건축양식은 문화재 감이란다. 저 버선코 겉은 추녀하고 깃도련 겉은 처마를 봐. 또 이 난간에 있는 봉황 조각은 어때, 못 하나 안 쓰고 홈을 파서 끼우고 아퀴를 맞춘 기라. 워낙 보수 한번 안하고 방치를 해서 그렇지 지금이라도 손 좀 보고 칠만 좀 믹이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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