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6)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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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6)

11

방바닥에 펴져있는 이불 밑에다 발을 밀어 넣었다. 냉돌의 차가움이 오싹 정강이를 감고 올라 왔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오래 전부터 친숙해 있던 동일 물체처럼 그녀의 체온과 쉽게 동화되어 버렸다. 그녀는 겨울을 좋아했다. 남들은 대개 그랬다. 만화방창한 봄, 만물의 소생이 누리의 축복으로 가득 찬 봄이 좋다고. 잠재해 있는 열정의 발산으로 뜨거운 열기, 무성한 수목들의 성장이 좋다고 여름 예찬을 부르짖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겨울에 더 친숙했다. 무엇보다 혼자일 수 있고, 혼자 웅크린 것이 조금도 이상스러워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좋았다. 나를 가장 나답게, 외로움이 표 나지 않게 두꺼운 옷으로 감쌀 수 있어서 겨울은 그녀에게 오히려 여유와 편안함을 주었다. 지금 양지는 그 냉기로 무장된 공간의 가장 한가운데 놓여있다. 게다가 어두움은 괴괴하게 잦아들어 심해의 밑바닥처럼 깊은 적막의 안온한 무게까지 선사하고 있다.

어깨에 내리는 적요를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던 양지는 갑자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 차가움, 이 어두움이 오늘은 출구 없는 벽 속에 갇힌 듯 한 두려움으로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안방 문을 열고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우수수, 검부러기를 쓸며 지나가던 바람이 흙먼지를 끼얹어 온다. 스산한 바람결은 히히히··· 괴기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감겨오는 검은손처럼 전신을 소름 끼치게 더듬기 시작한다. 서둘러서 처마 끝에 대롱 매달려있는 알전구의 스위치를 비틀었다. 낮은 촉수의 전구에서 조금 밀려 난 어둠은 더 빠끔하고 완강하게 버티고 서서 그녀의 고립감을 부추기고 있다. 양지는 못이 삭고 결이 휘어서 삐걱거리는 대청의 한가운데로 가서 천장에 늘어져 있는 전등불도



켰다. 하지만 어둠이 활짝 걷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다 전력소비를 줄이기 위한 낮은 촉수의 전구는 실망만 안겨준다.

이래서는 안 돼. 침착해야지. 양지는 자신에게 일러 듣기며 일체의 행동을 자제했다. 어설프게 뻗치는 마음을 가라앉혀 자신의 숨소리에다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자세를 낮추었다. 빛의 입자들 사이에 점이 된 듯 가만히 가라앉았다. 바람에 두런거리는 어둠의 소리를 들으며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바람 속에도 온기가 있었다. 어둠 속에도 밝음은 있었다. 조금 안정된 마음으로 양지는 눈을 떴다. 철사로 얼기설기 얽매어 있는 건넌방 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 문이 왜 저렇게 망가졌는가. 양지는 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속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양지는 고개를 저으며 벌떡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그렇지만 기억은 줄줄이 기억을 달고 나왔다. 고래 싸움은 언제나 새우들의 등에다 생채기를 냈다. 고래는 언제나 난폭하게 그릇이며 가구 등속을 온전하게 제 모양 지니고 남아있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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