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7)
아버지의 몸부림으로 당하기 마련인 자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머니가 당한 일방적인 위기의 흔적이었다. 특히 성남언니로 인해 하루도 평온한 날 없었던 그 때 더욱 부서진 문짝이 많다.
‘아, 자신은 얼마나 그렇게 완벽하고 우수했던가, 뻔뻔스럽기 짝이 없던 아버지…’
이 집의 다른 문들이 이나마라도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신학기가 되면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찾아와서 기웃거리고 점잖은 풍채를 앞세운 지방의 사학가들이 뻔질나게 찾아오기도 했던 기억을 양지는 갖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유산적인 건축물이나 유적의 가치에 눌려 후손들이 안팎으로 앓는 내상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세도있게 날 나가던 그때는 참 떵떵거리고 잘 살았지. 중국 무산의 십이 봉을 본떠서 지은 정원이라더라. 꿈속 같은 옛날 영화제. 흙 한 짐 지고 오는 남자한테 쌀 한 홉, 돌 한 덩이 안고 오는 아낙네한테 보리쌀 한 홉씩 품삯을 쳐주면서 기민(饑民)구제도 했고…. 비석 모듬에 보믄 오른쪽으로 넘어져 있는기 그때 나라에서 내린 공덕비란다’
몇 그루 남아 빨갛게 꽃 피우는 꼬부라진 늙은 백일홍 그늘 아래서 언젠가 어머니는 전설을 들려주듯 한 어조로 한숨 섞어 들려주었다.
양지는 쓸쓸했다. 영화로움은 조상들의 것이었지 후손들에게 남은 것은 선조의 빛과 그늘에 헷갈리며 몽유적으로 앓아야 되는 후유증밖에 없다.
양지는 대청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메마르고 검은 문살을 넘어 시선은 그 안으로 설렁 들어갔다. 묵혀 둔 방 특유의 방향과 적막 속에는 불탄 사당에서 옮겨 온 조상들의 위패와 족보 함이 보관돼 있을 거였다. 아울러서, 하늘을 찌르는 불꽃과 연기 속에서 들리던 요사스럽고 간드러진 언니의 웃음소리도 되살아났다. 그때는 정말 당장이라도 종말이 오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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