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8)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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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58)

‘집구석 다 망했다, 망했다!’

불길에 싸여 고스란히 주저앉는 사당 주위를 맴돌며 설치고 다니던 아버지의 고함 소리와 사당의 불을 끄는 일보다 아버지의 성화를 감당하지 못해 죽을상이 된 채 아버지를 따라 돌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머니. 금방이라도 혼령들의 불벼락이 떨어져 천지개벽이라도 난 듯이 공포심에 가슴 조이며 덩달아서 울어대던 자매들, 특히 뇌성마비 환자인 용남언니의 거품을 문 발작은 집안의 혼동과 비참의 극을 완성하는데 압권이었다.

양지는 불을 켜고 안을 들여다 볼까하다가 내밀었던 손을 문에서 뗐다. 허접쓰레기 잡동사니 물품들을 굳이 확인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몸을 돌리는 순간 그 안에서 들리는 어떤 기척 때문에 저도 모를 냉소와 아울러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어 떠오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여전한 소리였다. 찌익, 찍, 찍. 비좁은 틈에서 숨죽이고 있던 쥐들의 활동이다. 진작부터 쥐들의 소굴이 된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어머니는 아직도 제삿날은 어김없이 목욕재계하고 깨끗이 빠다린 흰옷을 갈아입은 뒤 쥐들이 비웃으며 분탕치다 곤두박였을 위패를 찾아내서 먼지를 닦고 쥐똥을 쓸어내면서, 너무 공손해서 떨리는 손길로 제수를 장만해 올릴 것이다. 그리고 조상들의 음덕이 남편과 딸자식들의 머리 위로 주저리주저리 내리기를 기원하고 또 소망하면서 눈물어린 눈길로 향연을 우러르며 하염없이 무릎 꾼 자세를 풀지 않을 것이다. 겉보기는 비록 야위고 작고 하잘것없는 인간이지만 그 정성만은 천지신명들을 감동시켜 기적같은 가호가 내릴 것을 간절히 염원하면서 말이다.

‘나는 분명히 신이나 운이 있다고 믿는다. 내 정성이 부족하여 운 때를 못 맞추는 게 탈이지만’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그의 마음가짐에 따라 만들어진다. 한낮의 그림자처럼 늘 왜소해 보이는 어머니의 자세가 그랬다. 신의 노여움을 탈까봐 어머니는 늘 작고 낮게 행동했다. 신의 가호는 기도하는 사람의 겸손한 마음에만 조응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을 지키는 방편이었을 뿐 딸들은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그런 자세를 존중하고 따르지 않았다.

어머니니까, 낳았다니까.

오감이 형성될 어린 시절 같이 살면서 익숙해진 습관대로 친숙한 기반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큰바위에 눌려 이리저리 쏠리는 볼품없는 들돌 따위의 탐탁찮은 존재로 어머니가 보였던 것이다.

양지는 차갑게 굳은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툇마루를 돌 때였다.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발목을 꺾었다. 복숭아뼈 깊이 박히는 칼날 같은 아픔과 동시에 천장도 기우뚱 같이 휘돌았다. 양지는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잡고 나둥그러졌다. 간신히 몸을 뽑아내며 버둥거려도 잡히는 것이라고는 찬바람이며 허황한 어둠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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