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145>바래봉, 덕두봉
명산플러스 <145>바래봉, 덕두봉
  • 최창민
  • 승인 2016.06.0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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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지난 철쭉 대신 초록이 맞아주는 산길
▲ 지리산 바래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 하얀 철쭉이 눈길을 끈다. 

지리산 바래봉과 덕두봉은 알려진 대로 철쭉의 산이다. 취재팀은 바래봉철쭉제 마지막 날인 21일 산행을 다녀왔다.

분홍색 철쭉꽃은 시절이 지나 색이 바래고 늘어져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싱그러운 초록의 수목이었다. 바래봉 능선에 올라선 뒤 철쭉군락 사이로 난 길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키큰 구상나무군락지가 뜨거운 햇살을 가려 큰 그늘을 만들어준다. 삼거리 샘물은 더위에 지친 산행객의 목마름을 가시게 했고 정상에서 맞은 바람은 이마의 땀과 마음의 때까지 날려 보내주었다.
 

▲ 덕두봉 가는길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등산객

정상을 넘어 덕두봉 가는 길에는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수 천년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드리 원시림이 취재팀을 반겼다. 숲이 우거진 등산길 주행은 마치 아련한 꿈 속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시절, 바래봉 산행은 몸에 꼭 맞는 새옷을 입을 때처럼 기분 좋게했다.

바래봉(1165)은 백두대간 지리산 노고단에서 북으로 꺾어 고리봉(1304m) 세걸산(1198m) 덕두봉(1151m)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지리산의 영험한 지세가 사그라지기 전에 위치해 주변 산들이 대부분 1100∼1300m 높이를 자랑한다.


산이름 바래는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때’에서 온 말로 봉우리 모양이 이와 비슷하게 생긴데서 유래했다. 이 외도 삿갓봉이라고도 하는데, 승려들이 쓰고 다니던 삿갓 모양과 같다는데서 유래했다. 산기슭에는 아담한 사찰이지만 한자 구름운(雲)과 알지(知)자를 쓰는 이름이 독특한 운지사가 있다.

 

▲ 운지사

▲등산로: 운봉읍에서 운봉중학교 방향 1.5km지점 용산마을회관 주차장→운지사 갈림길→바래봉 능선·샘터→바래봉→덕두봉→월평마을 갈림길→흥부골자연휴양림→관리사무소→구인월마을→용산마을회관 옆 주차장 회귀(택시이용). 11km, 휴식시간 포함 5시간 30분


▲오전 8시 50분, 산행은 운봉 용산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철쭉제 때문에 등산로 주변에는 파전과 막걸리 지역 특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래봉 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나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이라고 크게 새긴 자연 입석 앞을 지난다.

첫번째 운지사 갈림길, 등산로는 왼쪽 방향이고 운지사는 오른쪽방향이다. 운지사는 100m거리 숲속에 있는 아담한 사찰로 자연적인 것 말고 치장을 하거나 꾸밈이 없어 정감이 넘쳤다.

 

▲ 운봉이 내려다보이는 바래봉기슭 헬기장



절에서 반환해 산 어귀를 돌아가는 큰길을 따른다. 산 아래 농촌진흥청 소속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의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가축유전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보존하고 있는 국가 핵심 연구기관이다.

산허리를 돌던 길은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방향을 틀어 고도를 높인다. 코를 진하게 자극하는 향에 취해 고개를 들었더니 파란하늘에 우윳빛 타래 꽃을 단 아카시아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카시아 한그루가 내는 상큼한 향이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나 끌어 당겼을까.

한참을 올라도 길은 좁아질 줄 모른다. 아예 시멘트나 바위로 길을 정비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오를 수 있도록 했다 해도 눈에 거슬린다. 넓은 길을 내어도 길 아닌 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사이길 통행을 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다.

능선에 올라서면 멀리 바래봉이 보인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사라진 맑은 날씨 덕분에 하늘금을 따라 오가는 등산객의 모습이 마치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등산로 주변에는 꽃을 떨군 철쭉이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 일대 철쭉군락지가 형성된 것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원래 고산지역에 숲이 울창했으나 1971년 689ha규모의 면양목장을 설치하고 양을 방목하자 이들이 잡목과 풀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러나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이가 되지 못해 남게 됐는데 이 철쭉이 군락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거기에다 구상나무와 노각나무 거제수 등 키큰 나무들은 산불이 덮치면서 죽고 생명력 강한 관목류만 남은 것이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는 구상나무군락지 복원을 위해 조림사업을 진행해 지금은 자생력을 갖출 만큼 숲이 형성된 곳도 있다.
 

▲ 복원되고 있는 구상나무숲



오전 10시 30분, 넓은 헬기장이 있는 공터를 지나 10여분 정도 오르면 복원한 구상나무숲이 나온다. 자생한 나무와 조림한 나무가 뒤섞여 자라면서 생태계가 복원 중이다.


산정 가까운 곳에 있는 샘터는 태고 적부터 산짐승과 산새들의 놀이터. 지금은 쫓겨나 사람들의 아우성만 남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샘터에 새긴 글귀는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새겨볼만한 말이었다.

마지막 바래봉 하단부. 민둥산 경사진 곳의 흙더미가 사람들의 발길 탓에 산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된비알 곳곳에는 철쭉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분홍색을 가진 꽃잎은 모두 지고 돌연변이 백색의 철쭉꽃만이 남아 눈길을 끌었다.

 

 


철쭉의 개화시기는 고도별로 약간씩 다르다. 하단부인 해발 500m지점은 4월 26일~5월 2일께, 중간부(해발 700m)는 3일~8일께, 8부능선(해발 900m)은 8일~10일께, 정상능선(해발 1000m)은 10~25일이 절정이다.

오전 11시 5분, 정상의 하늘이 열린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중봉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화개재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 세걸산 만복대 고리봉까지 지리 연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닫혔던 마음이 안개걷히듯 사라졌다.

트레킹과 철쭉제나들이를 온 사람들은 대개 정상에서 왔던 길을 따라 하산한다. 취재팀은 월평마을(5km)로 방향을 잡았다.

바래봉에서 덕두봉까지는 30분이면 갈수가 있다. 등산로 좌우에 원시림이 우거져 산행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코스다. 바위 곁에 자리를 잡은 채 먼 산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산행객의 모습은 그야말로 유유자적이었다.

 

▲ 취재팀과 산우

덕두봉은 일명 흥덕산(興德山) 혹은 용산(龍山)으로 불렸다. 전설에는 현재 축산연구소 옆에 위치한 용산리와 관련 짓기도 한다.


덕두봉을 지나 5분거리에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구인월 방향 2.4km, 직진방향은 월평마을로 2.4km이다.

휴식을 취한 뒤 낮 12시 50분, 자리를 털고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등산로는 비교적 선명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나 성근바위들이 많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하산에 접어든지 1시간 만에 사방댐 옆을 지나 흥부골 자연휴양림에 당도한다.

흥부골 자연휴양림은 기존 휴양림과 달리 통나무집을 지양하고 토속적이면서도 현대화된 고유 한옥구조에 황토 흙벽과 너와지붕을 얹어 차별화했다.

오후 2시 20분, ‘구 인월’ 이정석이 있는 큰길 만난다. ‘인월’이라는 지명은 한자 끌인(引)과 달월(月)의 조합이다.

고려 우왕 6년 1380년 왜구가 인월 지역에 진을 치고 약탈을 일삼자 이를 토벌키 위해 이성계장군이 운봉에 입성했다.

장군은 긴박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전세를 뒤집지 못한 채 날이 어두워져버렸다. 이때 장군이 나서 하늘을 향해 달이 뜨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러자 동쪽에서 바람이 불면서 밝은 달이 떠올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인월이 됐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

 

▲ 바래봉 정상의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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