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3)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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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3)

누가 먼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이야기 끝에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남들의 경우라면 부부가 나눌 수 있는 상식적이고 평범한 대화라고 여길 수도 있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그라는디 딸을 많이 낳는 기 꼭 여자한테만 매인기 아이고 남자한테도 문제가 있다던만-”

그 순간 휙, 아버지가 들고 있던 낫날이 어머니의 얼굴을 찍을 듯이 겨누어졌다. 아버지도 들은 상식은 있었던 모양 그 말에 대한 반박은 말도 안 되는 기막힌 반박으로 나타났다.

“그라모 내가 아아 맹글 때 니는 뭐했는디, 내가 잘못하모 니가 발라야 될 거 아이가! 에편네가 누한테 할 소리로 나불나불 함부로 하고 있노!”

말도 안 되게 터뜨린 아버지의 울화통에 기막히고 억장이 무너진 듯이 아버지를 멍히 바라보던 어머니가 포기한 듯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번에는 성남어매 배 모양이 꼭 아들을 낳을 것 같아보인다는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 점 때문에, 낳다보면 섞밖이로 하나 쯤 다른 자식이 나오지 않겠나 제법 기대를 걸고 있던 참이었던 어머니다. 아버지 역시 그런 은근한 기대가 없지 않았던지 그 즈음더러 어머니께 제법 친절하던 참으로 밭일을 거들고 있었던 것이다. 무안한 얼굴을 들지 못한 어머니를 버려 둔 채 아버지는 일손을 놓고 쌩하니 멀어져 가버렸다.

그런 얼마 후, 산기를 느낀 늙은 개가 그러 하듯이 어머니는 아무도 몰래 뒤꼍의 방공호 속으로 들어갔다. 지푸라기와 헌옷을 깔아서 만든 어둠속 자리에서 정남은 세상으로 나왔다.

성난 고양이 울음 소리같은 이상한 소리를 들은 언니가 뛰어가는 뒤로 양지도 따라갔다.

그곳에는 이미 아버지가 와 있었다. 산고를 들키지 않으려고 입에 물었던 헝겊도 그대로 문 어머니가 태반 분리도 안 된 핏덩이를 거적으로 덮고 있었다. 이 모습을 거적문 틈으로 지켜 본 아버지가 허공을 바라본 채 이죽거리고 있었다.

“자알 한다. 니 뱃속에는 무슨 놈의 가시나만 그리 줄줄이 들었노”

밖에서 누가 뭐라 든 말든 멍청이처럼 무표정인 어머니는 갓난이를 베개처럼 차근차근 숨 쉴 구멍도 없이 몰아쌌다.

“옴마 이기 무인 짓이고!”

성남언니가 달려들어 똘똘 뭉쳐진 어린애를 풀자 비틀거리며 몸을 돌린 아버지가 허절허적 걸어갔다. 가다가 아버지가 거치게 되어있는 장독간 쯤에서 아악!아악! 통곡하는 소리와 함께 던지거나 치는 충격으로 오지그릇 박살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그 소리에 대항하듯 언니는 언니대로 북받치는 감정을 쏟아냈다.

“옴마, 개가 새끼 낳은 것도 아이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이가. 제발 좀 그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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