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 (경남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논에서 자라는 똑 같은 벼이면서 잡초 취급을 받는 벼가 있다.
다른 잡초가 다 그렇듯이 사람들이 그렇게 싫다고 뽑아내고 또 뽑아내도 땅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놈들이 봄철 논갈이를 하면 표면가까이로 다시 올라와 싹을 틔워 농민들을 속상하게 한다. 바로 이놈들이 앵미라는 이름을 가진 잡초성 벼이다. 일반적으로 붉은색 종피를 가진 놈들이 많고, 요즘 재배되는 벼에 비해 키가 커서 일반벼 위로 이삭을 내밀며, 보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염 같은 까락을 가진 놈들이 많아 한눈에 봐도 범상하지 않게 보인다. 탈립이 쉬워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도 하기 전에 어느 틈엔가 땅위로 종족보존을 위한 씨앗들을 흩뿌려버린다. 고약한 놈들이다.
최근 일반벼와 앵미를 교배해서 뇌 활성화 성분이 일반 현미의 8배, 흑미의 4배가 들어 있어 뇌 대사를 촉진시켜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청소년의 성장·발육 촉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또 신장기능 촉진 작용으로 에너지 소비를 촉진시키고 혈당화 효소를 정상화시켜 당뇨병에도 효과적이라는 가바성분(GABA: Gamma Aminobutyric Acid)이 높은 벼 품종을 육성한 사례도 있다. 전남의 어떤 작목반에서는 폴리페놀 성분 함량이 높은 앵미를 기능성 쌀로 특화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든 곳도 있다. 가을들판에 불쑥 고개를 치켜들고 수염을 휘날리는 녀석들이 보이면 “저놈들이 앵미라는 녀석들이구나. 그래,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온다고 고생했다” 라는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 주길 바란다. 아마도 그들이 조금은 달라보일지도 모르겠다.
김영광 (경남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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