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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46>모후산쇳덩이 레일로 갈라진 '어머니 품속 같았던 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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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0  16: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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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이한 단풍나무

모후산(母后山·919m)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전남 화순 남면과 동복, 순천시 주암, 송광면에 걸쳐 있다.

고려 때 홍건적이 침입하자 공민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왔다.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임시 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때까지는 나복산으로 불렸으나 왕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 해 모후산으로 바뀌었다.

그랬던 모후산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격하게 말해 저급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과욕 따위의 희생양이 돼 수려했던 산세를 잃어가고 있다.

산정에는 강우레이더 관측소라는 공룡 같은 구조물이 세워졌고, 도마치에서 정상까지 3.2km구간 산허리는 파헤쳐져 모노레일이 오가고 있다. 나무들은 잘려 나갔고, 산은 황토색 속살을 드러냈으며 그 위에 수 천톤의 쇳덩이와 콘크리트로 된 레일이 깔려 있다. 그야말로 산이 흉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화순군은 국책사업인 모후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건설과 함께 일반인의 관광용을 겸한다는 명목으로 수백억의 사업비를 투입해 대형 모노레일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용객이 거의 없고 효율성이 떨어져 현재 관측소 직원들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노릇이다.

옛 중국의 요동 태수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은 이산 아래 유마사에 거처했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모후산의 현재모습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등산로, 유마사→중봉·집게봉 삼거리→계곡목교1→계곡목교2 갈림길→철철바위→중봉→모후산 정상→강우레이더 관측소→용문재→계곡목교2 갈림길→목교2→유마사 회귀. 9km, 휴식포함 5시간 20분.

▲오전 9시 40분, 화순군 남면 유마로 일주문 앞에서 유마사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 등산 안내로를 따른다.

조금 오르다보면 정량암 앞 모후산 3.9km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 길은 집게봉을 거쳐 정상가는 길이다. 유마사 뒤편 계곡 위에 놓인 목책교를 건넌다. 등산로는 수량이 많지 않은 계곡을 따라 나 있다.

오전 10시 26분, 철철폭포에서부터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해진다. 물이 철철 흘러 넘친다는 의미인데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수량이 미미하다. 예덕나무 산뽕나무 굴피나무 산벚나무, 얄궂게도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에 터를 잡아 상처투성이에다 기이하게 자란 단풍나무가 터널 숲을 이루고 있다. 산벚은 어느새 검붉은 빛의 열매를 뽐냈다.

길 옆 산죽 속에 크고 작은 돌로 얼기설기 쌓은 돌담들이 보이는데 전쟁 때 빨치산이 사용했던 곳으로 알려진 은신처이다.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은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무대로 활동했다. 이 절도 전쟁 때 불탔는데 굽이진 핏빛 역사의 아픈 상처들이다.

주능선에 올라선 뒤 낮 12시 5분, 모후산 정상에 도착한다. 하얀 돔형지붕을 가진 국토교통부 소속의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우뚝하다. 급변하는 기상재해를 예방하기위해 설치한 것이라 이해하지만 굳이 거액을 들여 모노레일까지 설치해야 했느냐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 산벚열매


화순군은 처음에 관측소에 진입로를 내려했으나 향후 관광용으로 활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진입로 대신 모노레일방식으로 변경했다.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지적되고 있다. 모후산은 주암댐 건설과 담수로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에둘러 있다. 멀리 무등산, 조계산, 백아산과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취재팀은 정상 갈림길에서 유치재 방향을 뒤로하고 용문재 하산 길로 방향을 틀었다. 모노레일이 산을 타고 올라오는 방향이다. 반대편 유치재 가는 길 부근에는 고려인삼시배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인적 끊어진 마을 터는 대숲이 점령했지만 공동우물과 담장 길, 당산나무 거리 등 사람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 모노레일


이 지역을 고려인삼 시배지로 꼽는 이유는 국역 성호사설에 근거한다. 중국 요동인들은 산삼을 산나복이라고 하는데 모후산의 원래 이름이 나복산이었기 때문. 박봉우 강원대교수는 ‘중경지’ ‘소호당집’ 의 기록을 근거로 이 지역을 고려인삼시배지로 주장하고 있다.

모노레일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 기분은 기묘하다. 도회지의 고속 철길 옆을 지나거나 최전방 휴전선의 철책선을 지나는 느낌이다.

낮 12시 34분, 휴식을 겸한 점심시간, 부드러운 그늘과 바람골 좋은 장소를 찾다가 ‘포르르∼’ 하늘로 날아오르는 딱새 한 쌍을 목격했다. 새가 날아간 돌 틈 은밀한 곳에 자리한 둥지에는 갈색점이 촘촘히 박힌 바다색 새알 6개가 있었다.

바로 옆 모노레일이 지나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생명의 수레, 자연의 순환은 계속되고 있었다.

 

   
▲ 철책선같은 모노레일


오후 2시, 레일과 함께 이어진 등산로는 용문재에서 헤어진다. 현재 정자가 세워져 있는 용문재는 과거 유마리와 유천리를 잇는 고개였다. 이정표는 왼쪽 유마사 3.3km, 직진 도원사 4,8km, 남계리 11km를 가리킨다.

용문재에서 5분정도 내려왔을까. 하늘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문제의 모노레일이 오름길에서 내는 굉음이었다. 두 세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 내는 기계음 치고는 소리가 너무 컸다. 잠깐 보였다가 숲속으로 사라진 모노레일 소리는 중간에 끊겼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10여분을 더 기다렸다가 멀리 산정에 스멀스멀 벼룩처럼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더 내려서면 원두막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는 유마사 2.7km를 가리킨다. 의외로 이 구간에는 선이 굵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100년은 족히 넘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온전한 자태를 유지한 채 신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옛날 숯을 구워내던 가마터가 등산로 좌우 곳곳에 산재한 것으로 미뤄 예부터 이 지역에는 숲이 울창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오후 2시 40분, 오전 오름길에서 헤어졌던 계곡과 목책교량을 다시 만나고 절에 당도한다.

고즈넉하고 아담한 유마사는 관음전이 불사중인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다. 중국 요동사람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의 사연이 담겨 있는 절이다. 보안과 이룰 수 없는 사랑 놀음을 했던 부전스님이 회개하며 보안의 아버지 유마운의 호를 따 유마사(維摩寺)로 이름 지었다. 보안이 있던 방을 보안당, 보안이 놓은 보안교, 그리고 보안과 부전스님이 연을 맺기 위해 물 속에서 ‘달 건지기’ 내기를 했다는 제월천이 절 앞에 흘러간다. 제월천 옆 유마사 해련부도(보물 제 1116호)는 팔각지대석 위에 안치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팔각의 기단부위에 탑신석 지붕돌을 차례대로 올렸다.

 

   
▲ 유마사
   
▲ 해련부도



지리산 연곡사 동, 서부도에 비해 섬세함이 떨어지지만 규모는 비슷하다. 해련스님 부도인데 건립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미뤄 고려 전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 승병으로 활동한 경헌장로 승탑에는 특이하게도 호랑이와 사자, 멧돼지가 탑을 받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후 3시, 단청이 없는 일주문을 넘어 절집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에 돌다리가 눈에 띈다. 하나의 납작한 돌을 상요해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통돌의 크기가 족히 5m가 넘는다. 유마동천 보안교라는 이름을 가진 돌다리는 1919년 이전에 건립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 산딸기
   
▲ 숲 터널을 이룬 어머니 품속 같은 모후산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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