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6)
얼씨구, 저러니까 여편네들 소갈머리라고 하는 거지. 사람이 나야 땅을 다시리지 그 놈의 땅덩어리 많으면 뭐할 란가. 제 할 일 제쳐 두고 한 눈 파는 그게 집사고 마름이지 어디 남의 집 며느리야. 이 집에 놀고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제가끔 할 일 다 하면서 밥 먹지 헛밥꾸러기가 저 말고 또 누가 있어-
--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나보다. 어쩌면 이 길은 돌계집의 오명을 쓰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문득 오라버니의 책 속에서 보았던 글귀가 떠오른다.
언젠가 한번은 오리라 싶었던 그날이 오고 말았다. 병자도 아니면서 나는 피정을 가야된다. 산 좋고 물 좋은 동녘받이에 집과 세간이 마련되었다. 나는 거기서 천지신명의 정기를 받아서 수태를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영영 이 집으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예감이 그렇다. 그러나 소박데기는 될 수 없었다. 이대로 고이 순종을 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명약관화한 일이다.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대방으로 들어갔다. 이판사판인 심정이었다. 놀라워하시는 어른들 양외 분 앞에 석고대죄라도 하는 심정으로 꿇어 엎드렸다. 아바님, 어마님도 자녀를 수태해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 일은 저 혼자만으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지 않사옵니까. 아무리 당찬 오기로 달려들듯이 들어 간 걸음이기는 하나 남녀가 유별하며 항차 시어른들 안전에서 명색 며느리의 신분으로 차마 그 은밀한 부분까지 항의 할 수는 없었다. 고르지 못한 나의 거친 숨결이 전해 진 듯 아바님의 옷깃이 스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죽어 가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바님, 제 불찰이 있다면 시앗을 들이신 다해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젊은 저희들을 그렇게까지 핍박하시니 받자옵기 송구스럽습니다. 이번 일만은 제 뜻도 좀 감안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당돌하고 억센 물건이로구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잠자코 따르면 됐지, 해될 것 같애서 어른을 거역하려는 게야. 이게 바로 징조로구나.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말대꾸를 한단 말이냐. 너는 칠거지악도 잊었느냐? 일국의 국모도 어른을 거스리면 천벌을 면치 못하거늘-’
그 말씀에 나는 그만 봉창한 듯이 입을 다물어야했다. 시국이 그랬다. 시아버지와 반목해서 집안은 물론 국사까지 뒤흔들어 놓는다는 소리를 듣던 명성황후 민비가 왜놈들의 무도한 칼날 아래 이슬이 되었다던 소리가 몇 해 전에 들렸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암탉이 울면 집구석이 망한다고, 대차고 꺽센 여편네들 명념하라고, 애맨 아랫것들까지 엎어서 엄포를 놓으신 뒤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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