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8)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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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8)

-- 막상 내 몸에 태기가 있자 남편이 이상해졌다. 남의 우가 되면 입덧을 하고 심리적으로도 여자가 변화를 한다는데 우리 집은 그와 다르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 대로 밥도 잘 먹고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코를 골기도 하는데 남편이 이상해졌다. 그렇게 원하던 아기를 가졌는데 남편은 더욱 말이 없고 눈길을 마주치기는커녕 하루 종일 나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양 밖으로 나돌기만 한다. 때 조석을 거르고 잠을 못 이루는가 하면 종적 없이 사라졌다 며칠 만에 돌아오는 날도 많다.-



거기서, 양지는 잠시 읽기를 멈추고 어머니께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들이 뭐 애 낳는 기곈가 후져도 한참 후졌어.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가 여자는 전쟁에 내보낼 군사 아들을 낳아 바치게”

“여자 입장으로 봐서는 니 말도 틀린 말 아니제. 그렇지만 니도 언젠가 깨달을 때가 있을 끼다”

“깨닫긴 뭘 깨달아. 문명이 발달한 선진국 여자들은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인생을 즐긴단다”

“에이 숭시럽게. 그거는 또 그 나라 사람이고”

“여하튼 내가 집에 안오고 담 쌓고 살았던 이유는 분명해. 그런데 엄마”

양지는 아연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예사롭지 않은 연결이었다. 양지가 멈춘 대목은 새겨서 읽어야할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다.

양지는 미간을 모으고 불빛 가까이로 옮겨갔다. 그러나 서문의 나머지는 많은 부분 지질이 삭고 낡아 판독 불가능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보니까 아이는 생겼던 모양인데 왜 언양할머니는 집으로 오지 못하고 거기 혼자 떨어지게 되었는지 알어?”

양지에게 읽을거리를 넘겨준 뒤 눈을 감고 기다리던 어머니가 감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벽장 안에서 다른 누군가가 읊조리는 듯 현실감 먼 음성으로 얻어들은 남의 이야기처럼 풀어놓았다.

“새악씨가 집을 떠난 지 삼 년이 다 된 어느 저녁답에, 새댁의 남편인 너희 증조부님이 아직 이레도 안 지낸 갓난쟁이 머스마 하나를 안고 발소리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섰단다. 초췌한 안색이며 입성이 마치 중병을 치른 사람 같앴고. 이리저리 떠도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만 그날 밤, 영문 모르는 아랫사람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응당 뒤따라오려니 하고 산모를 기다맀는데, 그 사람들이 기다리는 인심 좋던 새아씨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더란다. 새아씨가, 극심한 산후복통으로 객지에서 세상을 떠난 걸 그 아랫사람들이 안거는 이튿날 조반 참이 끝나고 집사의 입을 통해서였단다. 몸 푼 해산어미가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죽은 일이 무에 그리 남부끄러운 일인지 절대 입 다물라는 대방의 엄명과 함께…”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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