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9)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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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9)

“대바늘이 한 코 한 코 짜 모아서 맹글어지는기 그물 아이가. 벽보고 하는 말도 새나가고 한 집에 입이 올맨데, 비밀이 어데 있것노. 나는 진외가 편으로 이리저리 줏어들은 걸 내 나름대로 이배기를 만들어 보니 집안 어른들이 어째서 그 일을 쉬쉬했는지 짐작이 갔고. 남에 말은 사흘이라꼬 그렇키 쑥덕거리던 소문도 어느덧 잦아들었시모 그대로 끝났을 낀데 뜬금없이도 내가 시집 온 새색시 고운 때도 덜 묻었을 적에, 바람에 날려 온 해 묵은 헝겊댕기 모냥으로 영문 모를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 그게 안 적히 있었더나.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연고가 걸리하모 직접 찾아와서 확인해 보라는디, 이리저리 쫑구를 대본께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이라 제사까지 지냈던 너의 증조모가 분명한기라. 이름도 처음 들어 본 머언 언양서 날아 온 참으로 꿈같이 놀라운 소식이라”



편지에 적힌 주소를 들고 어머니가 찾아갔을 때 미이라같은 형상으로 의식도 없는 증조모가 누워 있었더랬다. 조금 있으니까 편지를 보낸 동네 구장이 왔고 그의 말에 의하면 그도 태어나기 전인 어느 해 비 오는 날 냇가에 쓰러져있는 거지 여인 하나를 마을 일을 보고 있던 그의 아버지가 발견해서 목숨을 건져냈다던 거였다. 그악스레 끌어안고 목숨인양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보퉁이 외에, 이름도 신분도 자신을 증언할만한 아무런 기억도 여인은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몸을 움직일 만한 날이면 여인은 어디론가 길을 찾아 떠났다가, 마을을 벗어난 그 외의 길은 아주 잊어버린 듯이 며칠 만에 마을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해서 남을 해치거나 볼썽사나운 짓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을을 배회하건 말 건 동네사람들은 제 풀에 붙여서 그냥 두었다. 그런데 그녀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해서 일손이 바쁜 집에서는 더러 불러다 아기를 맡기곤 했는데 아주 잘 돌봐 주었다. 여인이 오고 난 뒤에 태어난 마을의 아이들 치고 그녀의 등에 업혀 오줌을 싸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였다. 잠자코 있으면 어느 댁 안방마님 못잖은 품위로 점잖던 그녀가 갑자기 광기를 보일 때면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었다.

특히 뇌성벽력이 치거나 돌풍이 무섭게 휘몰아치는 날에는 괴성을 지르며 새파랗게 질려서 발발 떨었다. 보이지 않는 누구에겐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천벌 받을 잘못을 저질렀다고 애원을 하는가하면 또 갑자기 백 팔십 도로 돌변해서 ‘내 아기, 내 아기’를 목메게 외쳐 부르거나 ‘그것은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억울하다’고 하늘에다 삿대질을 하며 맞대거리를 하기도 했다. 어쩌다 아주 잠깐 맑은 정신이 들었을 때 중얼거리는 소리나 행동을 보면 본 데 있는 집 사람이 틀림없는데 숨겨진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어 저런 신세가 되었는지 마을 사람들의 동정을 샀지만 엎친 데 덮친 듯 거듭되는 전란의 혼란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그녀를 위한 어떤 수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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