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79)
“대바늘이 한 코 한 코 짜 모아서 맹글어지는기 그물 아이가. 벽보고 하는 말도 새나가고 한 집에 입이 올맨데, 비밀이 어데 있것노. 나는 진외가 편으로 이리저리 줏어들은 걸 내 나름대로 이배기를 만들어 보니 집안 어른들이 어째서 그 일을 쉬쉬했는지 짐작이 갔고. 남에 말은 사흘이라꼬 그렇키 쑥덕거리던 소문도 어느덧 잦아들었시모 그대로 끝났을 낀데 뜬금없이도 내가 시집 온 새색시 고운 때도 덜 묻었을 적에, 바람에 날려 온 해 묵은 헝겊댕기 모냥으로 영문 모를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 그게 안 적히 있었더나.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연고가 걸리하모 직접 찾아와서 확인해 보라는디, 이리저리 쫑구를 대본께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이라 제사까지 지냈던 너의 증조모가 분명한기라. 이름도 처음 들어 본 머언 언양서 날아 온 참으로 꿈같이 놀라운 소식이라”
몸을 움직일 만한 날이면 여인은 어디론가 길을 찾아 떠났다가, 마을을 벗어난 그 외의 길은 아주 잊어버린 듯이 며칠 만에 마을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해서 남을 해치거나 볼썽사나운 짓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을을 배회하건 말 건 동네사람들은 제 풀에 붙여서 그냥 두었다. 그런데 그녀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해서 일손이 바쁜 집에서는 더러 불러다 아기를 맡기곤 했는데 아주 잘 돌봐 주었다. 여인이 오고 난 뒤에 태어난 마을의 아이들 치고 그녀의 등에 업혀 오줌을 싸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였다. 잠자코 있으면 어느 댁 안방마님 못잖은 품위로 점잖던 그녀가 갑자기 광기를 보일 때면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었다.
특히 뇌성벽력이 치거나 돌풍이 무섭게 휘몰아치는 날에는 괴성을 지르며 새파랗게 질려서 발발 떨었다. 보이지 않는 누구에겐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천벌 받을 잘못을 저질렀다고 애원을 하는가하면 또 갑자기 백 팔십 도로 돌변해서 ‘내 아기, 내 아기’를 목메게 외쳐 부르거나 ‘그것은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억울하다’고 하늘에다 삿대질을 하며 맞대거리를 하기도 했다. 어쩌다 아주 잠깐 맑은 정신이 들었을 때 중얼거리는 소리나 행동을 보면 본 데 있는 집 사람이 틀림없는데 숨겨진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어 저런 신세가 되었는지 마을 사람들의 동정을 샀지만 엎친 데 덮친 듯 거듭되는 전란의 혼란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그녀를 위한 어떤 수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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