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8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80)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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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80)

세월은 흘러 청년의 아버지인 구장은 여인의 보따리 속에 남편의 호패가 들어있는 걸 보았으니 업어 준 공을 갚는 뜻으로라도 이 가련한 여인의 연고를 꼭 찾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도 제 사는 일에 바빠 차일피일 늦었다고 그는 미안함을 표했다.

증조모는 마치 손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양지 어머니가 끓인 미음 한 숟가락을 넘기는 듯 마는 듯 하다가 다음다음 날 아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음씨 좋은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할머니를 매장한 양지의 어머니는 실로 구멍을 줄여서 끼고 있던 할머니의 금반지와 여러 가지 물품들이 꽁꽁 싸 매여 있는 때물에 전 보퉁이 한 개를 유품으로 전해 받았다. 그리고 그 고마운 마을 유지의 자손은 푼푼이 모은 할머니의 돈으로 마련했던 거라며 할머니의 움막 터가 등기 되어있는 땅문서도 덤으로 건네주었다.

“그럼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되는 건데, 엄마 시집 왔을 때 엄마는 할아버지한테서 직접 그런 비밀스런 낌새는 느낄 수 없었어?”

“해산 한 후 연해 세상을 떠났다고 어른들이 숨겼으니 아들인 너희 할아버지도 몰랐것제. 얼핏 짐작은 해도 그리 기막힌 사연이 숨카진 것 까지야 몰랐을 수도 있고”

“알고도 모른척 했겠지. 말 들으니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갑더만 뭐. 세상에도 어쩜 그럴 수가 있어. 기가 막혀. 너무 잔인해. 세상 남자들, 정말 너무해.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고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게 여자야? 나는 그럼 최가도 아니고, 누구야?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그러케 더 캐지 말고 덮어두라 안 카나. 잘못이 없는 사람을 설마 그리 했겄나. 편지했던 사람 말이 천둥번개만 치면 미쳐서 싹싹 빌었다는 말 듣고 나 역시 짐작은 했은께”

양지는 단박 숨결을 죽였다. 수 백 가지 성향으로 조합되었다는 여자의 불가사의 한 성정. 그 속에서 촉발된 기지라면 어떤 불가능도 가능케 했을 여지는 충분했다. 그제야 서서히 성가시던 명자의 깐족거림이나 아버지와 당골네와의 다툼에 대한 맥락도 어렴풋 잡혀왔다.

“니가 몰라서 그렇제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매든지 많은 기 이 세상이다”

기막힌 현장을 목격한 듯한 충격은 쉽게 진정되지를 않는다.

“말도 안 돼”

“내가 괜히 묵재 쑤석거리서 불 내는 짓을 했네. 그냥 없애삐리고 말걸. 인자 그래본들 본인들이 없는데 우찌 그걸 밝힐 끼고. 까내봐야 한 티끌 소득도 없는 거 모리는 데키 덮어놓고 살자”

“이런 엉터리가 어딨어. 족보가 무슨 소용이야. 그런 엉터리 문서를 친견한 특별한 자긍심으로 엄마는 평생 묶여 살았지”

“아이고 야가, 귀 자그러버 몬 듣겠네. 그냥 너가부지 자손이제 누는 누라. 고마, 탁 덮어삐리고 그냥 살자. 지난 과거지사는 탁 덮어삐리고 그냥 살모 되는 기다. 콩 팥도 아닌 걸 인제 와서 뭘 우떠키 밝히 낼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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