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8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83)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83)

호신용 물체가 어디 있더라? 양지는 자취방의 창밑에 숨겨 둔 방망이를 염두에 두고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불 켜지 마라!”

전등 스위치가 있는 곳을 겨냥하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뜻밖에도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참, 여기는 고향 집, 곁에는 어머니가 누워 있었지. 양지는 바짝 고조시켰던 긴장을 풀며 벌죽 어이없는 웃음을 날렸다.

괴상한 냄새는 이제 방만하게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고움이 쫄아 들어서 탔나봐, 이게 무슨 냄새고?”

“아이다, 걱정 말고 어서 자아라”

갑자기 숨소리와 동작을 경직시키며 어머니가 부인을 했다. 황망한 어떤 경계가 느껴지는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뭐 해, 불도 안 켜고 어둠 속에서?”

이불을 끌어 덮으며 누우려던 양지는 어머니 쪽을 응시했다. 어머니의 움직임은 은밀함을 내포한 채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상한 생선꾸러미를 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방으로 가져 와 저렇게 불도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헤뜨렸다가 다시 싸고 있을까.

동선의 곡직에 따라 악취랄 밖에 없는 그 묘한 냄새는 양지의 후각을 깊이 자극해 왔고 주시하고 있는 양지를 의식한 어머니의 동작도 대충대충 수습의 단계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모른 척하고 잠들 수 없는 기척이었다. 양지는 만류하는 어머니의 뜻을 무시하고 빠른 동작으로 불을 밝혔다.

“야도 참, 그냥 자라 캐도!”

역정스럽게 언성을 높인 어머니가 앞에 놓인 옷가지를 갑자기 끌어안고 감추며 부러진 듯이 엎드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미처 못 가린 아랫도리의 엉덩잇살이 불빛에 드러났다. 양지의 입에서도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피-!”

양지는 숨이 멎는 듯 한 충격을 가누며 어머니가 안고 있는 옷꾸러미에다 빠른 시선을 던졌다. 어머니가 입고 있는 다른 옷이며 손발, 젖혀진 이불자락과 방바닥에도 닦다만 피의 흔적은 선명하게 남아 양지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애써 아무렇잖은 듯 너스레 섞인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글씨, 먼 길 댕기 오니라꼬 몸치가 났는지, 내 딴에 곤했던 갑다”

많은 양의 하혈을 한 흔적이었다. 어머니는 태연을 가장했지만 양지의 가슴에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직 미혼이었지만 그런 상식쯤은 갖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런 걸 숨기고 있었어?”

집요한 눈길로 파고 물으며 핏자국을 가리고 있는 옷을 끌어당기자 어머니는 한사코 거부를 하며 와락 역정을 냈다. 건드리는 데 따라 그 역한 냄새는 더 강한 악취를 분산시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