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4)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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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4)

“야도, 자다 말고 수선도 부릴라 쌓네. 폐경인가 뭔고 되모 더러 왔다갔다 그리 변덕을 부린 담서? 아이고 우짠다꼬 이런 짭질찮은 꼴을 다 뵈이는고 쯧쯧쯧.... . 다른 이불 펴 줄낑깨 얼렁 자아라 고마. 첫 차 탈 끼라 안 캤나”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을 수습해 온 듯, 태연하게 개짐을 갈아 찬 어머니는 피 묻은 옷이며 뜯어 낸 이불 호청을 챙기더니 둘둘 말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고 몇 걸음 멀어지던 어머니가 되돌아 와서 잊었던 말을 생각해 낸 듯이 양지를 보고 웃어보였다.

“자식이란 전생 빚을 받으러 온 예쁜 책귀라더마, 인자는 더 나올 빚쟁이가 없다는 소식같애서 무척 고맙게 여기던 참이다. 걱정할 일 아무것도 아이다”

어머니는 일부러 태연한 목소리를 냈지만 양지는 저 혼자 가슴을 쳤다.



12

산부인과, 소아과 간판이 걸린 병원 앞에서 어머니는 또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에 비해 기다려도 기다려도 열리지 않을 문처럼 병원 문에 내려진 셔터는 오르지 않았다.

“그만 또 못 가네. 내 걱정 말고 가서 제 일이나 잘 보라 캐도”

“또, 또. 지금 내 일이 문제야?”

양지는 어린애처럼 만만하게 어머니를 대했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어머니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과 꼬인 일들이 마치 탐욕스러운 어머니가 떼쳐버리지 않고 일부러 얼싸안고 거느리는 애물단지들처럼 아주 못마땅했다.

“참 가아도 내 병은 내가 안다 캐도”

“엄마가 알기는 뭘 알아. 언제나 무엇이든 그런 식으로 싸고돌았지”

“나는 암시랑토 않건만 지끔 니가 들어서 병을 키우고 있네”

“아유 그만, 됐어, 그만!”

양지는 어머니의 말을 막아놓고 아예 외면을 하고 있었다. 서로 토닥거려 보아야 의사의 진단이 내리기 전까지는 매양 그 장단일 게 뻔했다.

첫 차를 타고 와서 문도 열지 않은 병원 앞에서 떨며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계속해서 애를 태웠다. 걱정 말라고, 알아서 한다고 안심을 시켜도 회사 일 때문에 어쩌느냐고 막무가내로 양지 걱정을 했다. 양지가 곁에 있으면 늘 이렇게 불편하고 미안해하는 게 어머니의 습관인 것을 양지는 잘 알았다. 더구나 오늘은 당신의 건강상태 때문 아닌가.

기다리던 참이라 제일 먼저 접수를 했어도 의사가 나와 진찰 가운을 갈아입기까지는 또 얼마나 기다려야할지.

양지는 눈앞에 붙어있는 사진으로 눈길을 보냈다. 올챙이 모양의 태아가 여체의 하부기관 어느 곳에 거꾸로 박혀있는 그림이다. 젊은 여자가 예쁜 아기를 안고 가는 것을 보면 나도 저런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스웠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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