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5)
그림을 보며 막상 제 몸의 일부분을 연상해 보니 아직 한 번도 열려보지 않은 기관의 감각들이 생소한 반응을 일으키며 징그럽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어지간히 보편화된 구식 구호였다. 또 다른 벽에는 이런 구호도 파란 글씨로 적혀있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그 사이에도 어린 환자들은 비좁은 대기실 안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우는 아이와 달래는 어른들의 소리, 콜록콜록 기침을 하거나 그 사이에도 귀저기를 갈아야할 정도로 설사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도 있다. 난로의 열기까지 어우러져 비좁은 대기실 안은 정신을 멍하게 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환절기의 불청객 호흡기 질환, 만만한 어린이들부터 공략. 이런 제하의 글을 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다.
“강 귀연 씨”
이윽고 진찰실 쪽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약간 흔들리는 눈빛으로 양지를 일별한 어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진찰실로 들어갔다. 양지는 끝까지 어머니를 동행하고 싶었으나 간호사가 문 앞에서 그녀의 진입을 막았다.
진찰실의 커튼을 젖히고 어머니가 들어간 후에도 어린 환자 몇 명을 더 진찰하다가, 준비 다되었는데요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커튼 뒤로 들어가는 중년 의사의 등이 보였다. 딸그락거리는 금속성과 함께 문진을 던지는 의사의 음성, 뭐라고 답변하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나직하고 가느다랗게 들렸다. 잠시 후, 물 쏟아지는 소리가 나고 손을 닦으면서 나온 의사가 책상 앞에 앉았다. 예상보다 짧은 진찰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굳은 표정의 의사가 어머니께 묻는 것이 열려있는 문 사이로 보였다.
“언제부터 그런 증세를 아셨어요?”
어머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의사는 더 묻지 않고 어머니의 문진 카드를 들여다본다. 잠시 후에 찡그린 얼굴로 매무새를 고치며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가족 누구랑 같이 안 오고 혼자 오셨어요?”
카드에 눈길을 박은 의사의 물음에 어머니가 양지를 돌아보았다. 밖에 서있는 양지를 본 의사가 눈짓으로 부른다.
“잠시 나가 계세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어머니는 진찰실 밖으로 나오고 문 어우름에 서있던 양지는 의사 앞으로 다가섰다.
“증세가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양지는 빠르게 어머니 쪽으로 돌아간 고개를 돌렸다. 얼른 입을 열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알았다고 바로 말해서는 당장 핀잔을 날릴 것 같은 날선 의사의 물음이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의사의 질문은 이어졌다.
“환자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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