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7)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7)

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고 어쩌면 필요 없는 일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자리 잡은 절망을 털어내며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벌써 밖으로 나와 햇살이 빗겨든 건물 벽 앞에 무연한 자세로 서있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아무 것도 아닌 걸 미련스럽게 굴다가 병만 키워왔다고 괜히 나만 무안당했잖아. 엄만 이제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 부리지 말고 꼭 내가 시키는 대로해야 돼, 알았지?”

가여운 어머니를 기죽인다는 게 마음 내키지는 않았지만 환자 본인을 두고 가족과 따로 면담이 있었던 것에 대한 어머니 나름대로의 판단을 헤뜨리기 위해 양지는 일부러 화난 목소리를 지어서 쏘아 붙였다. 엄마의 미련스러움 때문에 무안당했다는 양지의 구박을 듣자 미안했던지 어머니는 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참 주책이제, 제까짓기 무신 염치가 있어서 그런 까탈을 부리는지”

어머니는 마치 제 할 일을 등한시한 어떤 인격체라도 비난을 하는 듯이 입까지 삐죽거리며 자신의 환부를 나무랐다. 어머니가 그렇게 의연하게 나오는 게 우선 대하기는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조마스러운 심정으로 결과를 묻는 어머니의 눈빛에는 접착제같은 강한 미련이 들어있다.

“의사가 뭐라쿠더노?”

“자궁에 물혹이 생겼는데 그게 너무 크서 동티가 났단다. 염증이 심하대. 간호사들이 그러는데 수술해서 자궁만 적출하면 된대”

“글타카모 개안타. 전에도 혹 있다카는 소리는 들었디라. 그기 크모 안된다꼬 한 달에 한 분썩 검사로 해보자카더마 내사 안 갔다. 거어 갈 정신도 없었고. 지절로 쭐어지는 수도 있다카데”

“그게 커서 염증을 내모 큰일 난다 소리는 안하던가?”

“아이고 내비 도라, 설마 죽기 빽기 더 하것나”

“에나 그렇게 빨리 죽고 싶어?”

“야가, 또 말 꼬래이 물고 늘어져서 뭔 소리할라꼬. 내 형편에 뭔 욕심을 더 낼끼고. 인자는 참말로 힘도 없고 앉은 자리에서 밥도 떠미기주모 싶은데 움직거리는 것도 뭣도 당최 힘에 부친다”

아. 저 구원마저도 포기해버린 고절한 내면의 울림. 정말 비칠거리는 것도 같아진 어머니의 옆구리를 끼고 부축하며 양지는 어머니에게서 전해지는 마른풀 같은 냄새를 맡는다. 자신이 손을 놓는 순간 새털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듯 중량감도 느껴지지 않는 몸 피. 이 작고 텅 빈 여인의 허울뿐인 인생의 말로. 양지는 왈칵 끼쳐드는 육친에 대한 애착에 눈시울이 후끈 해졌다.

“여기는 의료장비가 시원찮으니까 대학 병원이나 어디 큰 종합병원으로 가란다. 엄마 또 돈 때문에 어쩌고 그런 소리하모 에나 가만히 안 있을 거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는다는 말 엄마들이 잘 쓰지? 꼭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라 엄마가 지금!”

“그라모 병원으로 또 가잔말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