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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백제의 미소길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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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1  22: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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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미소길 들머리에 선 표지석



◇백제의 미소에 담긴 염원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지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에서)

1959년, 국립부여박물관장이던 홍사준 선생이 당시 보원사터를 조사 나왔다가 서산지역에 사는 어느 나무꾼한테 들은 서산마애삼존불에 대한 얘기다. 가운데는 현세불인 석가모니부처님, 오른쪽에는 미래불인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는 과거불을 의미하는 제화갈라보살 입상인 서산마애여래삼존불에 대한 작품평을 지역민들이 익살스럽게 해놓은 얘기다. 어쩌면 이 마애삼존불을 백제시대 이 지역에 사는 백성들이 겪는 일상의 고된 삶과 그 삶을 극복하기 위한 염원을 미소에 담아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삼존불이 머금은 밝고 환한 미소에서 ‘백제의 미소’란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백제의 미소길’은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미륵불에서 서산의 용현리 서산마애삼존불까지의 약 9㎞의 탐방로이다.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떠난 백제의 미소길 힐링여행, 진주에서 출발해서 3시간여가 지난 뒤 도착했는데도 탐방객들의 얼굴에는 지루한 기색 하나 없었다. 모두가 백제의 미소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차서 그런지 초여름 초목처럼 생기발랄했다.

 

   
▲ 가야사를 불태운 자리에 이장한 남연군 묘


◇천하의 명당터, 남연군묘

‘백제의 미소길’ 둘레길 들머리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남연군묘부터 답사했다. 남연군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유택이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판을 치고 있던 조선말, 흥선군은 안동 김씨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파락호인 척하며 전국 각지를 10년이나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차에 지사(地師)인 정만인에게 명당터를 부탁하자 가야산 자락에는 ‘두 대에 걸쳐 임금이 나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오서산 자락에는 만대영화(萬代榮華)의 자리가 있다고 지목하자 흥선군은 二代天子(이대천자)의 땅을 선택했다고 한다. 남연군묘터에는 이미 가야사가 있었는데 흥선군이 사람을 시켜 절을 불태우고 금탑이 선 자리에 무덤을 썼는데, 묘를 이장한 7년 후 명복을 낳았다.

철종이 후사 없이 돌아가자 명복이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곧 고종이다. 고종의 아들(순종)도 임금이 되었으니 지사의 말대로 2대에 걸쳐 임금이 탄생된 것은 어쩌면 명당터의 발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선군의 마음 씀씀이가 옳지 못하다 보니 그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났다. 뿐만 아니라 흥선대원군과 며느리인 명성황후 간의 세력다툼이 조선의 멸망을 재촉하는 격이 되었다. 아무리 명당터라 할지라도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고 패악질을 한 사람은 스스로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것을 남연군묘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 환한 미소를 띤 서산 마애여래삼존불


◇밝고 환한 백제의 미소

백제 미소길 초입, 대패로 밀어놓은 듯한 박석(薄石)으로 포장을 해 놓았는데, 길바닥에 ‘백제의 미소길’이라고 표지글을 새겨놓은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남연군묘에서 200m 정도 걸어가니 상가리미륵공원이 나왔다. 상가리 미륵불은 특이하게도 골짜기에 북향하고 있는 불상이다. 처음에는 가야사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흥선군이 가야사를 불태워 없애고 남연군묘를 쓰자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는 설이 있다. 미륵불의 코는 새로 성형한 흔적이 남아있는데, 아기를 못 갖는 아낙이 이 코를 떼어가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코를 떼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표정은 말 그대로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더운 여름날 찾아준 탐방객들에게 미소로써 반겨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무표정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자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변치않는 항상심(恒常心)으로 우리들의 탐방길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줘서 안심이 되었다.

박석으로 포장한 인위적인 길을 한참을 걸어올라 가자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소달구지 두 대가 비껴갈 수 있는 큰 대로였다. 432억이란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닦아놓은 길인데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옛날 길을 확장했다고 하는데 차라리 그 옛길 그대로가 훨씬 풍치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가리미륵공원-대문동 쉼터-가야산 수목원-으름재 쉼터-백제의 미소공원-옹달샘-퉁퉁고개-소나무 쉼터-숯가마터-용현리 서산마애삼존불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참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특히 으름재 쉼터 근처에는 수많은 솟대새와 장승을 조각해 놓음으로써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한동안 머물게 했다. 유월 땡볕 속에서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용현자연휴양림에 이르자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백제 미소길의 마지막 탐방지인 서산마애삼존불에 닿았을 때 삼존불이 우리들에게 건네는 밝은 미소, 가식 없이 맞이해 주는 소박한 웃음이 우리들에게 생기와 환함을 선사했다.

해의 위치에 따라 바뀌는 다양한 표정을 가진 마애삼존불은 국내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예술적 가치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으며, 정면에서 보면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고, 좌우측에 앉아서 보면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신비감이 서려있기도 하다. 보는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 달라 보이는 미소, 정말 신비롭다. 돌에다 혼을 불어넣은 백제의 석공, 형이하학적인 물상을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승화시킨 능력, 경외감 그 자체다. 서양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삼존불이 건네는 밝고 환한, 그러면서 소박한 ‘백제의 미소’가 있다. 예술적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그 무엇에 견줘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가식없는 소박한 미소, 마음에 담아온 그 미소를 일상생활 속에 늘 머금고 다닌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행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백제미소길
바닥에 박석을 융단처럼 깔아놓은 백제미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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