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 모든 일이 인연이 아닌 것이 없다. 그중에 부부의 인연은 아주 특별하다 할 수 있다. 남녀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얼마만한 세월이 흘러야 하느냐 하면 옛날 지리산에 선녀가 목욕을 하러 내려와서 걸어갈 때 입었던 비단옷자락에 지리산이 다 닳아 평지가 될 만한 세월을 우리는 1겁이라고 하는데, 1겁의 10배인 10겁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고 한다. 부부의 연을 맺을 때가 되면 멀리 강원도에서, 전라도에서 살다가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옛날 어느 노총각이 결혼할 나이가 돼 점쟁이를 찾아갔다. “장가를 가고 싶은데 내 색시는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물으니 점쟁이가 “당신이 결혼할 신부는 동구 밖 할머니와 살고 있는 손녀가 있는데, 그 손녀와 결혼을 해야 할 운명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 손녀는 이제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아 당장 결혼해야 할 총각은 실망한 나머지 할머니 손녀만 없으면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밤에 복면을 하고 들어가 칼로 찌르고 도망을 갔다. 세월이 흘러 소금장수를 하던 이 총각은 어느 주막에 들러 국밥을 먹고 일어서려는데 할머니가 묻는다. “총각, 어디 잘 곳은 있는가? 없으면 오늘 이곳에서 자고 가게나.”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하룻밤을 묵게 됐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총각,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으면 우리 손녀와 혼인할 생각이 없는가”하고 할머니가 묻는 것이 아닌가. 얼굴도 예쁘고 다 좋은데 처녀가 앞머리로 이마를 덮고 있어 이상해서 물었다. 앞머리를 들어 올리니 칼자국 흉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옛날 동구 밖에 살았는데 웬 놈이 우리 손녀를 칼로 찌르고 도망갔는데 그때 생긴 상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를 듣고 총각은 깜짝 놀랐다. 자기가 칼로 찌르고 도망갔던 할머니 손녀가 아닌가. 인연이란 이렇게 해서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인연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생활해 간다면 보람 있는 삶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장문석 (대한웅변인협회 경남본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