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8)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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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8)

“그럼, 어서 가서 수술해야지”

“꼭 수술로 해야된다카모 그냥 여어서 하모 안되나. 수술은 윤앵이병원이 그리 잘한단다”

“환자들한테 욕 잘한다는 그 병원?”

“하모. 의사가 욕쟁이맹키로 엄살 부리는 여자 환자들한테는 이년 저년 소리도 하고 겁난단다. 그렇지만 수술 하나는 쌩괴이 배 따드키 쭉쭉 째서 참 잘한다꼬 소문이 짜하더라. 여북하모 서부경남에 있는 아픈 사람은 죄 그 병원으로 몰린다꼬 소문이 났겄나”

“내가 간호도 해야되고 회사 일도 있으니까 아무소리 말고 나하고 같이 가”

가족을 싸고돌던 환난이 종말의 결전을 어머니의 몸을 빌어 제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궁암은 자궁을 절제하는 것으로 다른 병소보다 치유 율이 높다는 상식도 적잖이 힘이 되었다. 끈에 묶여 천장에 디룽하게 달려있던 씨앗 자루를 연상시키는 그 물체를 어머니께 상기시키며 가벼운 농담조로 덧붙였다.

“인제 뭐 필요도 없는 것, 썩은 무 삐져내듯 미련 없이 싹 없애버리지 뭐”

마치 그 한 개를 절제해 버리는 순간부터 고통스럽던 현실의 모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는 듯이 목소리까지 가장되게 부풀렸다. 그래야만 자신이 감추고 있는 감정을 들키지 않고 어머니를 수술대 위까지 무리 없이 유도해 갈 수 있을 듯 한 것이다.

그러나 양지는 배우가 아니었다. 속에 든 아픔을 숨기고 언제까지나 너스레를 떨기가 어려웠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싶어서 얼른 정신을 차려보면 저마다의 생각에 골똘해진 모녀는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된장찌개 백반을 점심으로 시켜 먹은 식당에서도, 쥐가 들끓어서 송신해 못살겠다며 쥐약을 사러 어머니가 잘 아는 약국으로 갈 때에도, 면소재지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오도록 까지, 하다못해 엊그제 마을버스를 개통시킨 기철이네의 이야기나 지금은 일이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궁금증을 나타낼만한 호남의 이야기 한 마디도 대화에 올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어디로 가자면 양지가 따라갔고, 양지가 이렇게 하자면 하자는 대로 어머니도 그냥 따랐다. 이럴 때는 말수 적은 어머니가 이것저것 물으며 말을 걸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이 대하기 여간 수월하지 않았다. 집으로 오던 날만해도 이제는 가엾은 어머니를 위해서 좀 살갑게 대화도 나누고 봄볕 같은 미소도 자주 보이리라 작심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준비해 놓은 채로 끌러보지도 못한 예물 상자와 같다. 그러나 또 전과 달리 그녀가 자주 웃고 말을 거는 것으로 인해 어머니는 자신의 신체 한 곳에 이미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죽음의 씨앗을 눈치 채고 말 것이다. 고난스럽고 신산한 일상에 부대끼며 돛배처럼 살아온 저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보장해 주는 일은 전처럼, 여전히 뚱하게 입을 다물고 송판처럼 굳은 얼굴로 천 날 만 날 똑 같이 언행을 보여주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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