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9)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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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89)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담장 높은 골목의 이웃 사람들처럼 터놓고 지내지 못했던 모녀간의 소원했던 관계가 새삼스러운 편리함으로 다가왔다.

양지는 어머니의 일을 계기로 자신의 정서가 얼마나 강퍅하게 메말랐으며 사고력 또한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가를 다시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해에 한두 번씩은 약골인 체질에다 속앓이병까지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 약값을 보냈으면서 어머니가 이토록 큰 병에 걸릴거라고는 꿈에서조차 예측해 본적이 없다. 호남이를 시켜서라도 자주 건강검진이라도 받게 했으면 좋았을 걸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저 영원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거기 있어 줄 대상으로 알았지 육신에 도래할 수 있는 다른 이변에 대해서는 아예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집에 온 양지는 어머니를 억지로 누워있게 해놓고 밖으로 나왔다. 군불솥에 물을 데워서 어머니가 어젯밤에 벗어놓은 피 묻은 빨래를 씻어 삶고, 고향집에서는 영원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저녁밥을 제 손으로 지을 참이었다. 전에 없이 울멍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올랐다. 확실히 어머니는 나약해졌다.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 외로움과 황량함이 그녀의 굳은 마음의 밑바닥에다 균열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양지가 하자는 대로 무엇이든 고분고분 따랐다. 전 같으면 군불을 때는 것도 밥을 안치는 것도 내가 할 테니 너는 쉬어라 하지 절대로 일손을 양보하지 않았을 텐데 양지가 여며주는 이불 밑에서 어머니는 빈 자루처럼 후줄근히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양지의 속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는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가, 너무 그렇키 넋 놓지마라. 나는 기다리던 기 온 것 맨키로 기분이 하냥 개겁고 날아갈 것 맨키다. 부릴 곳이 없어서 이고 안고 뻗대던 짐을 이제사 내리 놓은 것 맨키로 기분이 차라리 깨반해서 좋다”

너무도 지겹고 힘들었던 이승살이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그것은 반대로 어딘가 기댈 곳 있으면 기대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기도 할 것이었다. 양지는 강한 전류에라도 쓸린 것처럼 찌르르한 감동을 느꼈다. 억지스러운 강요로만 느꼈던 효에 대한 개념이 회복해야할 인간심의 중요부분으로 의식되기도 했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애매하기 짝이 없던 가족관계에 대한 당위성도 제법 구체적으로 다가들었다. 비록 계란으로 철문을 부수다가 다 같이 혼절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의 고절한 가슴에다 뜨거운 인간애를 꽃 피워주는 일은 분명 자식들이 해야 될 바람직한 노력이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너무도 준비 없이 맞닥뜨린 일이었다. 양지는 사지의 기운이 모두 쭉 뽑혀버린 듯 한 무력감으로 흔들, 기둥을 안고 몸을 가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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