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0)
끓고 있는 물솥 앞에서 불을 쑤석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새까맣게 윤기 나는 두말지기 무쇠 솥에 한 껏 가득 밥을 지어 온 자식들에게 먹이는 들썩들썩 풍성한 날은 어머니의 꿈이자 조상 대대로의 염원이었다. 양지는 어머니의 인생을 녹여먹고 식인거미처럼 웅크리고 있는 무쇠솥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저 큰솥에다 밥을 지어야할 정도로 많은 식구가 불어날 것을 소망하며, 혼자 사는 썰렁한 부엌에다 쓸데없이 큰 솥을 모셔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기름을 칠한 듯 반질반질 윤나는 가마솥은 그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답답한 가슴이 해소될 아무런 말도 전해주지 않는 무생물일 뿐이다.
어머니는 어린 딸들을 데리고 명주베틀의 잉아를 걸거나 푸답한 빨래를 손보거나, 또는 베를 매면서 지나 온 과거사를 들려주고는 했다.
나이 열여섯 살. 요즘 여자애들로 치면 제게 따른 속옷 수발도 부모에게 미루고 어리광을 부릴 나이다. 그 어리던 어머니가 시집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홀아비 살림살이 누룽지로 앉은 집안의 묵은 때를 벗기고 서캐가 하얗게 박혀있는 빨래를 삶아 씻어 푸답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물론 윗대의 종부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사당참배와 족보 친견을 했으며 다산(多産)의 막중한 소임까지 무겁게 명받았다.
여러 자매가 있었으나 양지가 다섯 살까지도 같이 살았는데, 어느 날 왜 그런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집에서 사라진 동생도 있었다. 그 애가 어디로 갔는지 다잡아서 물어보지도 않고 그러려니 여기고 넘어갔다. 하나가 없어진 만큼 나머지 몫이 많이 돌아올 것에만 마음을 낚였던 없는 집 아이들의 영악함이란 은근히 그들의 실종을 묵인했던 지도 모른다.
단 한번 아들을 낳았고 호적에 올려보지도 못한 채 그 아들을 잃은 뒤 어머니는 미친 듯이 수태를 감행했지만 더 이상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를 몇이나 더 잉태했었다. 실성한 성남언니의 말로는 터울을 앞당기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의 묵인 하에 외갓집 친척 중의 누가 동조해서 저질렀던 만행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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