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1)
지금 어머니의 병은 능력의 한계에 이른 자궁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어머니의 단념 없는 생산의지가 가학적인 수태욕구를 불태워서 만들어 낸 병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며느리로 선택 된 것이 아니라 운명의 가계에 부품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여러 명의 여자들이 나누어서 해도 힘겨울 일을 혼자서 버팅 기며 헤쳐 나가야 하는 고통스럽고 억지스러운 삶의 멍에와 끄싱개.
양지는 아버지가 한창 혈기 방장한 혈기를 뿌리고 다닐 때를 떠올리면 조금도 외롭다거나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특권을 오롯이 혼자 누리며 즐기는 듯 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서 평생 남자를 멀리하고 그들을 멸시하며 살수도 있는 능력을 길렀고 독신자 클럽인 우먼파워의 결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상의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 아버지의 인성이 성급하고 괴팍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였다고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늘 아버지를 두둔했다.
언젠가의 봄이었다. 겨우내, 어머니가 지어놓은 곡식 가마를 들고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외출이 잦던 아버지가 읍내 술집의 작부를 건드려서 애를 뱄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웃 아주머니의 귓속말로 소문을 들은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이 어그러지도록 앞으로 꼬꾸라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혼을 빼앗긴 것처럼 멍하니 있던 어머니가 스적스적 부테를 끌러 던지고 건넌방에 있는 아버지께로 갔다. 그러나 대청을 건너가기도 전에 어머니는 허공을 잡고 쓰러졌다. 방에다 뉘여 놓고 물을 떠먹이던 아버지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물러앉으며 소리를 질렀다.
“입이 광저리 구녕 같애도 할 말이 없제. 내가 천 여자를 거느리건 만 여자를 거느리건, 니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해놓은 기 뭐꼬. 투기 부릴게 따로 있제”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진 듯 눈을 감아버렸다. 아버지는 억지를 부렸다. 미안한 기색은커녕 목소리까지 더 높아졌다.
“쓰잘데 없는 투기하지 말고 네 속으로 아들만 하나 떠억 놔봐라 누가 뭐라카나. 내가 미친 놈이가. 나도 좋아서 그 짓하고 댕기는 줄 아나?”
그 당당한 힐난에 기가 질려버린 어머니.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기승하게 뻗어있던 아버지의 욕구는 막으려는 것 자체가 무모한 항전이었고 헛수고였다. 어머니는 그저 끄이끄이 울었다.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할 줄도 모르고 그저 울 줄만 아는 천치 등신 같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무성하게 들려오는 소문에 비해 아버지의 아들은 어디서도 안겨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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