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2)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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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2)

양지는 들고 있던 부지깽이를 돌연한 동작으로 아궁이 속의 불길에다 던져버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피 맺힌 듯 처절하던 어머니의 절규가 뇌리 속에서 쟁쟁 되살아났다

‘이 몸 저 몸에서 아아만 숫자를 불리노모 뭘로 믹이고 뭘로 입힐 끼요. 죽어도 좋소 끝까지 내 몸으로 내가 낳을 끼요’

사잇문 쪽으로 흘깃 어머니가 있는 안방을 돌아보는 양지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비쳤다. 그만 툭툭 끊어서 나누어버리지 무슨 이득 볼 꾸러미라고 끝까지 혼자 끌어안고 뒹굴기를 어머니는 자원했을까.

어머니는 빠른 행동에 비해서 극히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누가 말을 걸어서 하고 있는 일이 방해 받기라도 하면 상대방이 무안하도록 발끈한 표정을 드러냈기 때문에 양지네 자매들은 어머니가 일하는 주변을 감돌기만 했지 응석다운 응석 한 번 어머니께 부려 볼 엄두를 못 냈다. 하므로, 말하는 순간에 무로 해제되는 비밀이라도 간직한 듯 한 어머니께 양지가 들은 집안일의 정보란 한계적이고 단순한 것들뿐이었다.

의뭉스럽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굳이 입을 열려하지 않는 어머니의 굳은 뜻이 담긴 명료한 한 마디가 있다면 ‘알모 뭐할 끼고. 괴롭고 골머리만 아프제’ 였다. 사실은 양지도 그런 어머니의 묵비에 힘입어서 여자가 여자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처사라는 따위의 불필요한 감정의 분산 없이 이제껏 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므로 양지는 집안일에 무심한 언니라고 호남에게 늘 핀잔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든 제 능력으로 하여 모든 처리가 가능해지는 큰 힘이 생기는 그 날까지 양지는 고향집의 일에 등한하다는 동생의 비난을 크게 마음 쓰지 않고 들어 넘겼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쥐 세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왔다가 뒤늦게야 양지를 발견하고는 혼비백산하여 까맣게 그을린 시렁대를 타고 곡예 하듯이 도망을 친다. 그렇게 보아 그런지 한미한 가세에 어울리게 쥐들조차 굶주려서 바싹 여윈 것 같다. 쥐들이 도망가는 쪽 천장에 엉킨 실오라기처럼 늘어진 채 흐늘거리는 거미줄도 을씨년스럽다. 부스럼 딱지처럼 알매가 떨어진 사이로 엮은 대오리가 떨어질 듯 아슬아슬 메마른 흙덩이를 움켜잡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뒤틀린 설주 때문에 야무지게 잠그지도 못하고 지그려 놓은 형국으로 닫혀있는 뒷문으로 황소바람이 불때마다 흙먼지가 들이치며 모래를 흩뿌리는 모습 또한 황량한 그녀의 심사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부엌에서 나오니 골목길 저쪽에서 부릉, 꽁무니를 돌려서 달아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마당에 밀려 온 검불을 비질 하다말고 양지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군데군데 무너져있는 마른나무 울타리 너머의 텃밭 가장자리로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양지는 바깥마당으로 나서며 까치발을 해서 시선을 그쪽으로 모았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가렸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다.

‘내일 너 따라 갈라카모 너그 아부지를 먼저 만내보고 가야 될 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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