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3)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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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3)

양지를 따라 큰 병원으로 가기 전에 언양에서 갖고 온 돈의 전달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부름을 받은 그 여자 쪽의 사람인지도 몰랐다.

성근 울타리 사이로 얼핏얼핏 형체를 드러내며 남자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양지는 어머니가 누워있는 안방을 일별한 뒤 바깥마당으로 나와 상대방을 기다렸다.

바람이 한결 누그러져 햇살도 몹시 푸근했다. 짚북데기를 뒤집어쓰고 참새 몇 마리가 노닥거리고 있는 게 저만큼 서있는 마당가의 향나무 아래 보였다. 뇌리를 짓누르는 양지 자신의 심정과는 대조적으로 무척 평화스럽고 천진해 보이는 풍경이다. 발소리에 이어서 막상 드러난 남자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양지는 가슴이 철렁 무너지는 듯한 놀라움으로 움찔 뒷걸음질을 했다. 현태였다. 그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알고 마중까지 나왔어? 봐. 우리는 기막히게 텔레파시까지 잘 통하지?”

전날의 앙금도 없이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을 날리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코끝 찡하게 반갑기도 한 남자. 듬직한 육신의 한쪽에서 쑥 밀려나온 철봉같이 힘찬 팔. 악수. 양지는 저리듯이 전신을 감도는 반가움을 숨기며 현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거리쯤 뒤로 물러섰다. 이웃의 눈길을 의식하며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결례가 어딨어”

내밀었던 손을 거두지 않고 한 발 더 다가서며 현태가 나무랐다. 손을 잡는 다는 것은 화합과 협약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저 남자의 강한 심리는 얼마든지 자기 지향의 의지대로 상대방을 핍박할 것이다. 양지는 어느새 동요했던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차분함을 회복했다.

“우린 어린애들 아니잖아”

“누가 뭐래? 내 발로 올 권리는 나도 있어. 여기는 대한민국 땅이고”

담배를 꺼내고 피워 무는 동안 농을 하던 현태의 얼굴도 목소리도 정색을 되찾았다.

“남의 말은 귓전으로 흘리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의논이라도 해봐야 해결 방법이 생길 것 아냐. 이렇게 몸만 피한다고 돼? 넌 너의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일마다 어렵게 만들고 있어”

그러나 이미 양지의 마음은 그와의 단절을 확정 지어 놓은 뒤여서 조금 치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급한 절차에 쫓겨 지금은 양지 자신의 의사를 존중하는 척 할지라도 흔쾌하게 준비되어있지 않은 마음자리는 두고두고 두 사람의 가정생활을 옹색하고 불편하게 하다가 결국은 돌이키기 어려운 길로 삐뚤어져 서로의 우정마저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타고난 인체마저도 충분히 불행한 그 불쌍한 어린아이의 전정까지도.

“같이 오시겠다는 부모님을 만류해 놓고 온 것만도 내가 지킬 예의는 지켰어. 어른들은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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