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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7월8일 3면 '남일대해수욕장'
박은정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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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9  21: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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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떠오르는 단어다. 본래 바캉스(vacance)는 프랑스어로 휴식과 휴가를 뜻하지만 여름에 떠나는 휴가를 특별히 바캉스로 부르기도 한다.
60년대 들어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바캉스 문화가 도입되었다. 무더위가 시작되면 한강변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해운대는 피서객으로 바글바글하다는 기사와 사진들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부작용도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7월말 8월초에 몰리는 피서객들, 바가지요금, 피서철을 노린 절도범 등등 바캉스는 또 다른 전쟁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뜨거워지는 몸과 등줄기와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 떠나야할 때가 왔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라지만 바캉스 철이 되면 우리는 꿈틀댄다. 벌써 7월도 중반을 넘어 다시 바캉스의 계절을 맞았다. 60년대의 청춘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편집부 박은정

 

   
1967년 7월8일 3면 '남일대해수욕장'


1967년 7월8일 3면 '남일대해수욕장'

피서는 바다에서 
남일대해수욕장 개장

남일대 해수욕장의 개장을 알리는 기사이다. 
지역 유일의 해수욕장이었다고 하니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바캉스를 즐기는 청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진물처럼 처리했지만 들어가야 할 주요정보는 모두 들어있다. 삼천포시에서 거액의 시비들 들여 해마다 겪는 숙박난과 교통난을 해소를 위해 시설 보강을 했으며 기타 편의시설을 설치했다고 한다. 
당시 남일대 해수욕장까지 가기 위한 교통편은 기차와 버스였다. 진주~삼천포간 20분마다 운행하던 버스는 바캉스 철만 되면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경남일보 그 때 그 시절, 그때 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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