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8)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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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8)

“현태 씨, 고마워. 고백하겠는데, 현태 씨는 참 괜찮은 남자야. 지금껏 내가 만나 본 어떤 남자보다도 특히”

“그럼 됐잖아. 망설이지 말고 그 결벽통을 꽝 파기해서 던져버리란 말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어떤 사람에겐 너무너무 어려울 수도 있어. 엄마, 지금까지는 나 혼자만 생각하고 살았지. 하지만 지금은, 우리 엄마 얘기했지? 우리 엄만 다른 엄마들하고는 달라. 말로 표현이 안 돼. 그런 엄마를 혼자 놔두고 내가 어떻게. 안 돼, 내가 우리 엄마를 버리고 무관심한 건 곧 나를 버리고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둘의 능력은 하나 보다 두 배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지? 전에도 말했지만 양지는 지나친 피해망상에 젖어있어. 우리나라 어머니들 모두 비슷비슷하게 살았어. 모두들 양지 같은 생각이라면 우리나라 여자들 독신 홍수 나겠다”

“난 그래. 사실은 나 모순투성이라는 것 나도 모르지 않아”

양지는 농담 섞인 억양으로 어투를 바꾸며 현태의 집요한 설득에서 벗어나려했다. 세상에 쌔고 쌨는 게 여자인데 나를 어떻게 보고 몇 년이나 지치지도 않고 매달리는가. 고맙고 안쓰러워 생각을 달리해 보려고 시도해 본적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적인 가정의 결혼관이란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깊이 인지하고 있다. 양지의 머릿속에는 소명받은 것 같은 말들이 간직되어있었다.

‘슬기롭게 곧게 너 자신을 지켜야한다. 너를 잃는 것은 곧 바로 너의 몰락임과 동시에 어머니는 물론 자매들, 친구들 많은 여성들의 몰락이기도 하다’

양지의 설득을 납득하지 않는 현태는 마치 최후의 선언이나 하는 것처럼 굳어진 안색으로 제의했다.

“온 김에 어머니께 인사나 드리고 가겠어”

“엄마는 지금 집에 없어”

그럴 리 없다는 듯 양지의 기색을 살피며 안마당 쪽으로 걸어가는 현태를 조마스러운 마음을 숨기고 태연히 서서 바라보았다. 막아서지 않는 것이 거짓은 아니라 여겨졌는지 우정 고개를 빼고 울안을 기웃거려 보던 현태가 몸을 돌려 나왔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속상해 못 견디겠는지 기어코 그 특유의 독설을 꽥꽥 토악질 하듯 쏟아놓았다.

“마지막으로 내 한 가지 충고하겠는데 너는 여자가 아니고 괴물이야. 몸 따로 마음 따로 방황하다가 그대로 독신으로 늙어 죽게 될 거야. 머리통만 키웠지 여자의 진정한 자존심이 뭔지도 모르는 착각 속에서 말이야.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는 것, 그게 여자로서는 최상의 성취고 만고불변의 원칙이고 진실인 거야. 그걸 뒤죽박죽으로 헝클어가며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삶이란, 특별함 그 자체부터 말짱 헛거야. 그래 어디 독야청청 고고하게 잘 해보라구. 아주 만족스럽게 순도 99,9푸로 완벽한 인생을, 잘난 척하는 여자들이 떠들어대는대로 어디 한 번 잘 살아보라구. 이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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