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1)
“엄마는 지금 집에 없어”
“내가 가방 끈 짤다꼬 일일이 돌려대서 얕보는 건 아는데 나도 니 쏙을 다 꿰고 있거든. 이 거짓말쟁이 가시나야. 병원 갔다 오는 거 본 사람이 다 있거든”
피가 역류 된 빨간 얼굴로 명자가 바짝 다가들었다.
“쾌남이 넌 너희 집에서 맏이니까 책임을 느껴야 돼. 니가 나라도, 아니 니가 나였다면, 넌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오기도 남달랐으니 나보다 훨씬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거다. 저 넓은 들판의 실제 주인이면서 우리 할아버지는 굶어서 죽었어. 그 윗대까지 갈 것도 없이 반편이처럼, 법 없이도 살 착한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너도 잘 알지?”
“잠깐”
양지가 말을 자르며 끼어들자 올곧은 시선에다 더욱 파란 불씨를 돋우며 명자가 쏘아보았다.
“오늘 일을 봐서도 언니가 맘만 먹으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어. 그렇지만, 언니는 그럼, 떠도는 소문은 못 믿는다고 물증을 대라고 우리가 맞선다면 어쩔 것인가는 생각해 봤어?”
“거금 들이가 연변서 받아 온 녹음테이프, 편지, 증인 서 줄 동네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래, 언니네 입장을 부인은 하지 않겠어. 언니어머니가 우리 엄마한테 했다는 말도 다 이해할 수 있었고. 하지만 옛날에, 우리도 모르게 저질러진 일을 가지고 왜 우리가 가해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 지. 나도 할 말은 있고 불쾌해. 유전자 감식이라도 할 준비는 되어있어? 또 우리가 믿고 받들면서 산 족보는 속량된 노비였던 조상이 돈으로 산 것일 수도 있다는 건 생각 안 해봤지?”
“속량이 뭔데, 내가 모르는 유식한 말로 애맨 소리할래?”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기철이한테 물어보면 알꺼고. 부탁인데 언니야. 못난 후손이 조상 뼈다귀나 울궈 먹고 산다는데, 우리 좀 이러지 말자”
양지가 전문적인 문제까지 들고 나오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던 듯 명자의 얼굴에 문득 난색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양지는 이내 시들해졌다. 이 일에 관한 한 일체의 언급을 회피하기로 작정해 놓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토를 달고 말았다.
잠시 멈칫하던 명자는 이내 발발 떨리는 뜨거운 손으로 양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잘 됐다. 동네 사람들 다 불러다 놓고 증거를 보여줄 테다. 내 딴에는 그래도 죽은 성남이 가시나 생각에 그냥 조용히 매조지할까 했는데 니가 그리 나온 께 차라리 잘 됐다. 구년 묵은 원한 좀 씨언스럽게 훑어내 보자”
명자의 아귀찬 손의 악력이 조여들자 떨어질 듯 팔목이 아팠다. 양지는 정색을 하며 뿌리쳐서 잡혀있는 손을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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