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3)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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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3)

“야튼 가자. 성냄이 가시나 생각나서도 이 기분 이대로 돌아 갈 수는 없으니까 너희 어머니라도 만나보고 가야겠어.”

“엄만 지금 집에 없어. 우리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는 눈 많은 언니엄마나 기철이한테 물어보면 더 잘 알 거구”

양지는 기막힌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명자를 남겨두고 집이 있는 반대쪽으로 걸었다.

“망할 가시나. 그래도 가방끈 길다꼬 한 마디도 안지고 맞서네. 그래 가마 타고 나 웃기는 짓했다. 그렇지만 이 계집애야, 너 콧대 센 자존심 꺾고 비틀거릴 때 있을 거다”

투덜거리며 명자가 뒤따라왔다. 양지가 돌아보자 턱 받아서 마주 선 명자가 씩씩거리며 서있다.

“집, 팔라꼬 내놨담서 와 그런 소리 우리한테는 안 하노?”

양지는 을씨년스러운 눈길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남의 소유가 되어버리면 옛 기억까지 날려버릴 수 있을까. 이 삐뚤어진 계집애의 감정을 더 건드려 보았자 별무 소득이라 여겼던지 명자도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양지는 집으로 뒤따라 올지 모르는 명자를 따돌리기 위해 아까 현태와 같이 있었던 동멧등으로 다시 올라갔다. 발소리로 명자의 기척도 뒤따라왔다.

“우리 어릴 때 여기서 청솔가지 꺾어다 솔태도 타고 그랬는데”

별로 변한 것 없는 동산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명자가 감회어린 듯 중얼거렸다. 양지는 천천히 명자를 향해 돌아섰다. 옛날을 상기시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콧등이 시큰했던 것이다. 그 순수를 떠나서 우리는 얼마나 엉뚱하게 우리가 원해 본적도 없는 방향으로 표류했을까.

“언니는 성공했잖아. 여기서 덮어 줘. 우리 언니 이름으로 내가 부탁할게”

말하는 순간 핑글 눈물이 돌았다.

“가시나야 진작 그라지. 호냄이 일도 있는데, 니 쏙이 얼매나 탈낀지 내가 다 안다. 그라모 족보도 돌리 줄끼재?”

“족보? 그게 아직도 그렇게 소중한 가치가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해? 우리 아버지 최태복 씨 이름이 올라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대전인가 어디 족보 박물관도 있다는데 그게 가서 기록을 찾아보고 발루모 되겄지”

“그래 꼭 갖고 싶다면 언제 돌려줄 날도 있겠지”

“옴마야!”

순식간에 얻어낸 양지의 대답을 듣고 놀란 명자는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될 것을 믿었는지 제법 다음에 보자는 인사까지 먼저 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그런 명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양지는 고개를 숙이면서 겉옷의 단추를 채웠다. 안장산 능선을 타고 내려 온 날쌘 바람결. 돛폭처럼 뿌옇게 길바닥의 먼지를 걷어들고 장난꾸러기 아이들같이 바람은 내처 길을 따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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