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1)
시간을 벌기로 하고 고속버스 대신 비행기 표를 바꾼 것까지는 썩 괜찮은 출발이었으나 탑승 시간 전까지의 여유를 별난 구경이라도 시킨답시고 공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상가까지 발길이 미쳤던 게 화근이었다. 안경점 앞을 지나자 어머니가 양지의 팔을 당겨 세우며 눈짓을 했다.
“저거. 엄청 비싼 거 아이모 너가부지 꺼 하나 사자”
부러진 안경테를 반창고로 접착해서 끼고 있던 아버지의 낡은 안경이 퍼뜩 떠올랐다. 그러나, 아버지를, 더구나 지금 상황의 어머니 입을 통해 그 아버지를 호사시킨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 속 가시가 발딱 일어섰다. 양지는 울컥 치미는 성깔대로 뾰족하게 쏘아 주었다.
“엄마가 지금 아버지 안경 생각하게 됐어?”
‘이후부터는 소리 질러 비명을 토해야 될 만큼 통증이 심하게 될 겁니다. 출혈량과 빈도도 잦을 거구요. 어서 일 보시고 와서, 수술 스케줄 놓치지 않게 하세요. 시기가 너무 늦은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죠.’
양지의 뇌리에는 간호사의 주의 말이 계기판 마냥 부착되어 있었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어머니가 무심하게 미간을 찌푸려도 지금이 간호사가 말한 그 긴박한 통증의 시간이 온 것은 아닌가, 긴장과 당황함을 동시 다발로 경험하고 있는 중인데, 해소할 길 없는 억하심정에 가압의 풀무질을 하듯, 생뚱스럽게 아버지의 안경이라니.
“아니, 내가 사는 기 아이고 니가, 비싼 거는 아이라도 거저 니가, 너가부지 큰 자슥인께 -. 하기사 이런 데는 너무 고급이 돼서 택도 없이 비싸것제, 그만 가자”
“비싸고 싸고가 문제 아니야. 나는 도저히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청승이야, 청승!”
순간, 어머니의 빠안한 눈길이 양지를 응시하더니 아래로 차악 내려지며 돌아갔다. 얼굴 전체에 접착제라도 붙여두고 간 듯 끈적함이 남는 묘한 시선이었다. 쓸쓸한 표정으로 저쪽의 다른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가 빨아들이듯 아랫입술에다 침을 묻히더니 다시 양지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심지가 생긴 듯 꼿꼿한 목소리에는 전에 없이 얼음장 같은 냉기마저 어렸다.
“야야, 그라지 마라. 니는 그래도 너가부지 큰 자석이다. 니사 큰 자슥이 되고자해서 된 거는 아이다만, 남으 큰 자석은 어데가 달라도 다르니라. 인자는 니도 그만 나이도 들었고 이런 말 내가 입에 담기는 부끄럽다마는 고생하면서 객지생활도 그만큼 했시니 엔간하모 너가부지도 좀 안됐기 생각해라. 겉으로는 자기 할 짓 다하고 산 것 겉애도 따지고 보모 이 에미보다 더 가엽슨 냥반이나가부지다. 그 놈의 양반 체면 지키니라꼬 못하는 것 없지만 안하는 듯이 큰소리 치고 살았다만 속은 메밀대 맹키로 약한 양반이다. 나는 그래도 친정붙이라도 있지만 돌에도 나무에도 붙일 데 없이 외로운 그 심정을 누가 다 알 끼고. 오죽하모 평상을 외눈으로 지냈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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