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2)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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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212 사본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2)

“째보아재한테 받고 온 수모를 들으모 가슴에 피가 진다. 째보아재가 누고. 너가부지가 누 땜에 눈을 다쳐서 평생 병신 소리 들음서 살았는데, 그 사람이 그런 괄시를 한 기 뭔 이유것노. 너가부지겉은 겉이 까시 센 양반인께 그 절통한 가심을 달고서도 이 나이꺼정 버툿고 살았제. 휴우 생각만 해도 징한 세월이다“

”듣기 싫어. 아버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그래, 니 말이 맞다. 뭔 일이든지 다아 지 맘에서 우러나야제……“

어머니는 그렇게 선뜻 긍정은 했지만 기대가 어그러진 어두운 얼굴로 양지의 옆이 아닌 저쪽의 비어있는 의자를 찾아가서 앉았다. 짓지르듯 대해 놓고 나니 요놈의 성질머리, 후회가 되었다. 곁으로 다가가서 일부러 시계를 보며 화장실 안가도 돼요? 말을 붙였지만 그만 정도는 나도 이미 계산하고 있다는 듯, 새치름하게 굳어진 안색을 풀지 않고 어머니는 딴 데로만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앵돌아졌을 때 보이는 어머니 특유의 딴전이었다.

부부애란 저런 것인가. 여기면서도 아직 그런 감정을 체험해 보지 않은 양지에게는 낯설고 혐오스러운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양지가 알기로 남편인 아버지에게서 어머니가 받은 것은 괴팍스러운 불친절과 지긋지긋한 고생, 차라리 과수댁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쇳덩이 같은 부담스러움밖에 혜택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이성을 인생의 반려로 골라야할 싯점에 이르렀다고 깨달을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양지의 기억은 불가항력적인 폭군의 잔인한 이미지로 되살아났다. 그 감정은 다른 이성은 물론이며 현태를 저울질하는 데도 고스란히 작용을 했다. 하므로 고향집에 대한 일체의 것들을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살아왔지만 독즙을 흡수한 잔뿌리의 영향으로 거목이 병증을 일으키듯 영혼에 각인 된 아픈 상흔으로 인한 그녀의 정서는 부지불식간에 진저리 치며 남성에 대한 거부감부터 일으켰다.

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토라져서 잠든 아이처럼 고개를 외로 꼬고 있는 어머니의 작은 얼굴에서 양지는 울멍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연민을 느꼈다.

이 복 없는 여자, 가여운 어머니를 위해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으로서의 정성을 다하리라.

늘어뜨려져 있는 어머니의 손을 무릎으로 올려놓으며 양지는 가만히 어깨를 기댔다. 앙상하게 야윈 어깨지만 산사람의 피부라 차츰 전해 오는 따뜻함을 양지는 깊이 받아들였다.

육탈 되듯이 무덕무덕, 나뭇잎도 들판의 곡식들도 시야에서 다 사라지고 산천은 나날이 여위어 갔다. 다녀 간 지 엊그제인데도 산이나 들판은 그새 성긴 베옷으로 가리고 누운 나신처럼 앙상한 바탕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바람 끝에 하나, 눈비 끝에 하나,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것들은 차례차례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고 다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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