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3)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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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3)

조용히 비명소리도 없이 죽고 사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식물들의 세계다. 잘 갈무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걷어 간 것들이 있는가 하면 천지자연의 섭리대로 흔적 없이 소멸되는 것들. 사람이라고 어디 다른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연의 뚜렷한 생성 소멸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 몸부림 같은 안달을 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덩실한 누마루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양지는 귓결에 들리는 어머니의 기척을 하나하나 읽고 있었다.

“인자 니하고 같이 살라꼬 그란다.”

집에 온 이후로 어머니는 열심히 정리 정돈을 하고 있다가 양지와 눈길이 마주치면 몸도 성찮으면서 부지런 떤다고 나무랄까봐 지레 겁먹은 당황함을 보이며 궁색한 변명을 하곤 했다. 구석지에 방치되다시피 놓여있었으나 의식의 밑바닥에서는 여전히 위엄으로 도사리고 있던 조왕단지며 신주단지 명색은 물론 아버지의 일용품들도 따로 몽땅거려 두었다. 무엇이든 지키고 일으켜 보겠다고 어지간히 붙잡고 애쓰던 것들이었지만 이제 병들고 지친 육신으로 떨려나듯이 물러나야 하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한숨이나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어머니의 동작은 시종 침착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양지는 과연 어머니답다는 감탄을 숨기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남 몰래 앓으면서 밤을 지샌깐으로는 표 없이 밝은 얼굴로 일찍 일어나서 깨끗이 소제해 놓은 마당에다 빨간 색 주단을 깔듯이 정갈하게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쳤다. 저녁 무렵에 무녀들 셋이 와서 굿을 시작하면 내일 아침 언니의 분골한 유해를 강산에다 돌려보내는 것을 끝으로 굿은 끝나고 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여태꺼정 우찌 이기 남아 있었실꼬. 이따가 너거 오빠 장꺼리 싣고 오거등 이거 조오라. 생각하모 피눈물 흘릴 일이다만 즈이 부모 손길에 놀던기라꼬 그래도 좋다 안카겄나”

구석방을 정리하고 있던 어머니의 먼지 묻은 손에는 갈색 자그마한 퉁소 한 개가 들려 있었다.

넝쿨식물과 얽혀 공생하면서 만들어진 흔적으로 몸통이 잘록잘록한 대나무 피리.

양지는 그때서야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며 들판 너머 산모퉁이 길로 시선을 주고 있었던가를 일깨웠다.



고종사촌 오빠, 푸줏간 사장 장현동.

고종은 아버지의 누님이나 누이동생의 자녀를 일컫는 말이라고, 가까운 친척이 없는 양지는 들은 상식으로 아는 정도였다. 짝수는 형제 항렬이며 홀수는 아저씨뻘이 된다는 것도 일가가 많지 않은 양지로서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촌수 따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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