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날았던’ 시인 김호길씨의 문학청춘
‘하늘 날았던’ 시인 김호길씨의 문학청춘
  • 김귀현
  • 승인 2016.08.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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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본보 신춘문예 출신…도미 후 '농부'의 길
▲ 김호길 시인.



“어디 사람이냐 묻지 말아요. 어디 사람인지는 몰라도 내 뿌리는 이 곳이니…”

대신 어디라도 집이라던 노시인은 지갑을 열어보였다. 지갑 속 주민등록증은 한국에 뿌리내렸다는 일종의 증거였다. 시인은 여전히 미국과 멕시코, 한국을 오간다. 일년의 절반은 반드시 뿌리에서 머무른다는 김호길 시인을 고향에서 만났다.

시조에 깊이 이름 새긴 그는 지난 1962년 본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1963년 열렸던 진주 개천예술제 제1회 시조백일장에서는 장원을 거머쥐었다. 이름난 문학청년은 육군보병학교에 자원입대한다. 그의 삶에는 비행이 더해진다.

김호길 시인은 “철원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 온 천지에 흩어진 전쟁의 흔적을 두고 시를 썼다”며 “1년 뒤 소위로 임관하고부터는 파일럿을 꿈꾸고 육군항공학교에 입학했다. 시조문학에 ‘하늘 환상곡’으로 등단한 때도 이 때와 머지 않다”고 말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된 그는 미 육군항공학교로 유학을 떠났다가 한 해만에 항공학교 본부로 돌아왔고 월남전에 참전한다. 제대 이후에는 대한항공에 입사해 하늘을 날았다.

입사 8년 만에 직장 문을 나섰다. 파일럿의 일상은 과감히 끝맺었다. 해양운송업체 임원, LA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미국 LA로 적을 옮겼다. 농사일에 몸 담은 때가 1983년. 우연히 신문에서 본 농지 렌트 광고가 ‘농부’ 김호길을 만들었다.

시인의 농삿일 이야기는 더 없이 현실적이었다. “인생 최대의 실수지. 농사일은 파일럿 시절 꿈이었으니…생업도 마다하고 농지를 일궜어요. 만만하지 않은 일에 겁도 없이 뛰어들었지요.”

1년 가량 노력을 쏟자 결실이 돌아왔다. 한국 농산물을 여럿 심고 거둬 소득을 냈다. 어엿한 이름 있는 농장을 경영하는 농장 주가 돼 승승장구하는 듯도 했다. 하지만 주거래처가 파산하면서 농사일은 제동이 걸렸다. 남은 기자재와 트랙터까지 팔아넘겼지만 간신히 은행빚만 갚을 수 있었다. 어느새 가정을 둔 가장은 멕시코로 향했다.

김호길 시인은 시작 활동에도 결코 소홀하지 못했다. 시집과 수필집을 내며 작품 활동에 임했다. 지금 그는 멕시코 라파스에 영농법인을 세우고 여러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맨 손부터 살만 할 때까지를 고스란히 겪었다”며 “쉬운 일이 어딨나, 혹독해도 묵묵히 임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주 후반 그는 만해 한용운을 기리고자 제정된 ‘유심문학상’의 올해 수상자가 됐다. 지난 2012년 발표한 ‘모든 길은 꽃길이었네’가 가져다 준 상이다. 수상 이야기를 할 즈음 우리 시조에 깊은 애정을 표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10년도 더 전에 어린이시조집을 내고, 어린이시조사랑축제를 이끌었습니다. 함께했던 박구하 시인의 사망과 스스로의 위기가 겹쳐 모든 것이 중단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 시조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특히 시조문학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그는 ‘세계어린이시조사랑축제’ 등이 유지되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어린이들의 시조 접근을 도왔다. 재미시인들 작품을 엮은 주미 앤솔로지 발간, 남·북미, 중국, 러시아, 일본과 우리나라를 이은 ‘세계 한민족 작가연합’ 결성, 올해 초 시집 ‘사막시편’의 영문판 ‘Desert Poems’의 출간도 이같은 뜻의 연장선상이다.

“살아있는 우리 글과 우리 얼이 시조인데, 우리 시조야 말로 세계화에 걸맞아요.”

대화 말미, 문득 김호길 시인은 성성하던 목소리를 낮췄다. 그의 목소리는 소탈한 삶을 읊던 예의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나그네의 꿈은 처음과 같았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참 많지만, 나는 늘 날며 지나며 살겠지요. 지내는 곳이 곧 집이지 않겠어요?”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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