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4)
  • 경남일보
  • 승인 2016.08.11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14)

그런데 양지는 어제 뜬금없고 난데없이 고종사촌 오빠를 소개받았던 것이다. 어제 아침나절에 어머니를 따라서 굿거리 장을 보러 시내로 갔을 때였다.

어머니는 시장 복판에 있는 꽤 크고 번다한 어느 정육점으로 들어가, 갓 들여와서 선지피가 뚝뚝 듣는 쇠다리에 매달려 뼈와 살을 분리하고 있는 오십 대쯤의 덩치 큰 주인 남자에게

“자네 외삼촌한테 저녁 때 집에 좀 다녀가시라고 전해줘”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동행한 낯선 여자인 양지에게로 보내는 주인 남자의 관심을 눈치 채고는 중요한 일을 빠뜨릴 뻔 한 황당함을 나타내며 양지를 가까이 오게 하여 인사를 시켰다.

“니한데 고종오빠다”

처음 듣는 친척, 그것도 오빠라는 가까운 호칭에 양지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어머니가 덧붙였다.

“설명하자모 길다. 담에 언제 알 날이 있겄제”

“외숙모님한테서 말은 많이 들었네. 오래비가 변변찮애서…. 서로 일찍 알고 지내야 될 낀데 미안하기 됐다”

앞이마가 약간 벗겨진 후한 인상의 남자는 벅찬 감격과 친숙함을 더 많이 표현하기 위한 듯 아프도록 힘주어서 양지의 손을 덥썩 움켜잡았다.

양지는 남자의 손아귀에서 흐르던 피가 잠시 멈추고 맥박이 팔딱거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눈은 그가 매달리고 있는 일거리에 비해 너무 맑고 선량해 보였다. 그러나 양지는 그쪽처럼 감격스러운 표정은 지을 수 없고 어머니도 이제는 아버지의 난봉으로 맺어진 그렇고 그런 사이를 척족이라고 인정하게 되어 딸에게도 인사를 시키는구나 싶은 실망감만 표 나지 않게 삭이느라 되도록 태연하게 상대방을 응시하며 목례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로부터 어머니 자신도 몇 해 전에야 인사 받게 된 생질의 출생이나 생존에 대한 내막을 듣게 되자 반박하려고 준비해둔 많은 말들은 모두 무색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오늘날이라고 해도 별 수는 없지만 과거는 그야말로 여성들에게는 억압과 박해의 수난 시대였다. 여성의 저력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폄훼되고 무시당한 어머니, 그 어머니들의 어머니들인 선대의 모든 여성들….

양지는 하늘이 손닿는 물체라도 된다면 마구 뒤엎어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꼈다. 흔히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 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비롯된 못된 상하개념의 통용일 뿐 남자의 존재는 높고 여자의 존재는 하급으로 치는 사고부터 고쳐야한다. 땅 없는 하늘이 무슨 소용이며 하늘 없는 땅은 또 무슨 소용인가. 현태의 어머니도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 이파리나 꽃이라했다. 둥치가 없는 이파리나 꽃도 존재할 수 없지만 이파리나 꽃이 없는 나무의 존재도 무의미하기는 마찬가지다. 함에도 아버지란 이름의 남자들은 자기 어머니 외의 여자들에게는 시혜라도 베푸는 듯 군림해 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